셰바르드나제 국민영웅서 실패한 독재자로

입력 2003-11-23 19:02수정 2009-09-2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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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외무장관으로 냉전 종식의 ‘1등 공신’이며, 그루지야의 ‘국부’로 불리며 10년 넘게 대통령직을 맡아온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75).

그가 야당과 반정부 시위대의 거센 퇴진요구에 굴복해 물러났다.

▽변방 그루지야의 풍운아=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카프카스의 풍운아’로 불릴 정도로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밟아온 인물. 카프카스지역의 소국이며 국제사회의 변방인 그루지야 출신이면서도 세계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정치생명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까지도 모두 잃어버릴 처지가 됐다.

1928년 흑해 연안 마마티에서 태어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극적인 변신을 통해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18세 때인 46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옛 소련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일하다 그루지야 공산당 지도자가 됐고, 다시 모스크바로 진출해 소련공산당 정치국원에까지 올랐다.

그루지야의 국부로 대접받아 온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을 실각 위기로 몰아넣은 두 주역. 왼쪽은 미하일 사카쉬빌리 국민행동당 당수, 오른쪽은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된 니노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로 모두 30대다. -트빌리시=AFP연합

85년 개혁·개방 정책을 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집권한 뒤 소련 외무장관에 발탁된 그는 ‘신사고 외교’를 통해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독일 통일과 동유럽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이어지는 냉전 종식을 주도했다. 한-소 수교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도 한몫했다.

▽영웅에서 부패한 독재자로=91년 소련 해체로 조국 그루지야가 독립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최고회의의장을 거쳐 즈비아드 감사후루디야 초대 대통령에 이어 92년 대통령이 됐다.

이후 특기인 외교력을 발휘해 독립 직후 민족분규로 생긴 내전사태를 수습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국민들은 서방에서 인기가 높은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서방의 경제지원과 서구식 경제개혁을 이끌어내 가난한 그루지야를 근대화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민영화와 외자유치 과정에서 측근들의 부정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95년과 2000년 대선에서 부정선거 시비를 잠재우며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지만 이미 민심은 떠난 상태. 두 차례나 암살 위기를 넘겼다.

독재와 장기집권에 따른 부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자 지지세력도 잇따라 이탈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미하일 사카쉬빌리 국민행동당 당수(35)와 니노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39·여)는 모두 과거 그의 측근이었다.

BBC 방송은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군과 경찰을 장악하지 못한 데다 지지세력이 없어 버티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테프자제 국방장관은 23일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립을 선언했다.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지만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앞날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그루지야 사태 일지▼

11. 2 총선 실시(대통령 신임투표 성격)

11. 4 야당, 부정선거에 항의 시작

11. 6 선거 결과 발표 2주 연기

11.20 선관위, “여당 승리” 발표. 서방, 부정선거 비난

11.21 시위 격화

11.22 시위대 의사당 점거

야당, 브르자나제를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

셰바르드나제, 국가 비상사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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