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別曲]<11>이상향을 그리는 화가 이광택

입력 2003-11-19 18:25수정 2009-10-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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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광택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사는(生) 것이다. 그는 그림에서도 욕망의 부산스러움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담백한 이상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의 아내는 서울손님들을 위해 마당에서 꺾은 꽃들을 한아름 꽃병에 꽂아 두었다. -춘천=강병기기자
강원 춘천시에 들어 공지천을 지나고 소양강변으로 접어드니 늦가을 분위기가 완연하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춘천시 동면 장학리 마을은 도심의 번잡함을 잊게 한다. 이곳에 사는 서양화가 이광택씨(42)의 첫인상은 ‘수학 선생님’이란 별명 그대로였다. 단정한 표정과 목소리는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광기(狂氣)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그림 삼매(三昧)’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어떤 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명이 나면서 붓놀림이 빨라지고 온몸에 신열이 나요. 손끝이 저릿해지면 급기야 붓을 내던지고 지휘자처럼 두 팔을 휘휘 내젓다가, 손뼉을 치고 소리도 질러 봅니다.”

이렇게 푸닥거리(?)를 하고 난 후에는 그림들의 완성도도 높아지지만, 마음까지 충만해진다고 했다.

고교시절 고고학자를 꿈꾸다 화가로 맘을 바꾼 것은 자신이 살던 춘천의 밤 때문이었다고 한다. 밤 10시경 교문을 나서면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 중앙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가로등, 섬 수평선 위에 녹아내리던 낚시꾼들의 카바이드 불빛들. 그런 어둠과 그림자를 그리고 싶어 미대에 갔다.

그는 자신의 20대를 “우울한 짐승의 시대였다”고 회고한다. 처음 떠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엄습하는 이질감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럴수록 내면은 황량해졌다.

군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어려서부터 낯익은 산천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고향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아내를 도우면서 작고 조용한 그림을 그리던 그는 귀향 10년 만인 98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보낸 3년5개월간의 유학생활. 중국인들은 가난했지만 관대했다. 비록 이 생의 삶이 힘들더라도 항상 먼 곳에 시선을 두는 그들의 여유를 보면서 낙관과 관조를 배웠다. 다시 고향에 돌아온 그는 캔버스에 자신의 꿈을 담은 이상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당이 예쁜 그의 집에 딸린 화실에선 다양한 이상향의 세계들을 만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듯, 빽빽한 숲 한가운데 작은 집 한 채가 있고 달빛이 그득한데 부부가 책을 읽는다. 산자두꽃 무성한 산길에서 집 앞을 소요하는 화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밭 가운데서 뛰노는 아이들… 따뜻하고 담백한 그의 캔버스를 바라보면, 세속의 걱정이나 두려움은 저만치 물러간다.

새벽마다 물안개 자욱한 춘천 소양강변은 그에게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안식처이자 ‘정신적 망명의 공간’이다. 소양강변을 거닐며 작품 구상을 자주 하는 그는 자신도 들꽃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좀 더 나이 먹기 전 옛날 민화를 그리던 화인(畵人)들처럼 ‘떠돌이 화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화가 이광택씨는 어수선한 이 시대에 느리지만 차분하고 깊은 사유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진정한 야인(野人)이다.춘천=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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