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 안방까지]<6>노사갈등기업 대출 "글쎄요"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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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 320조원 가운데 외국인 지분은 약 130조원으로 전체의 40%가 넘는다. 또 한국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이해 당사자로서 자신들이 투자했거나 대출해 준 한국 기업들의 속내를 낱낱이 들여다보며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체의 최대 경쟁력은 ‘속도’=“한국의 제조업체는 신제품을 연구개발(R&D)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하고 신제품을 연구해 시장에 소개하는 기간이 대단히 짧다. 프로덕션 매니지먼트(생산관리)도 잘 한다. 한 마디로 짧은 시간에 물건을 잘 만든다는 것이 한국 제조업체의 장점이다.”


영국계 투자은행인 UBS의 진재욱 서울 지점장은 한국 제조업체의 최대 경쟁력으로 제품개발에서 제품 출하까지 이르는 시간이 경쟁국에 비해 짧다는 점을 꼽았다.

반도체나 평면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 산업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 대만 등에 비해 늦거나 비슷하게 출발하고도 더 빠른 속도로 첨단 제품을 개발, 순발력 있게 시장에 제품을 내놓아 이익을 얻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이와 함께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통신·인터넷 분야의 업체들이 한국의 서비스산업을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씨티은행의 김찬석 이사는 “세계적 정보기술(IT) 산업의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신 및 인터넷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는 투자대상으로서 한국 기업의 단점인 동시에 장점으로 꼽혔다.

메릴린치 증권의 이원기 전무는 “한국 기업의 ‘오너 경영’은 폐단도 많지만 한국 기업이 반도체,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장악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반도체 같은 사업에 대한 투자는 규모가 크고 시장상황이 불확실해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결과를 책임지는 ‘오너’의 존재 때문에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경직된 노동여건이 최대 약점=“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질식될 정도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인력을 조정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생산성 증가를 앞지르고 있는 임금 상승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윌리엄 오벌린 주한 미 상공회의소 회장이 이달 초 주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콘퍼런스에서 터뜨린 불만이다. 한국계 기업에 대출해 줄 때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UBS의 진 지점장은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 일부 주요 분야를 제외하면 노동 생산성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떨어져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계 은행 관계자들은 노사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기업이라면 미래의 불투명성이 커지고 대출의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어 기피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씨티은행의 김 이사는 “오랫동안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해온 선진 금융회사들은 대출받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나 현금 유동성과 함께 노사관계 등을 대출요건으로 꼼꼼히 따진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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