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들여다 보기]인기 방송인의 정계진출…글쎄요

  • 입력 2003년 11월 1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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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씨가 정치권에 꽤나 시달렸던 것 같다.

오죽 괴로웠으면 자신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본인이 직접 “총선 출마를 예상하는 보도가 100% 오보”라고 밝히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겠는가. 이는 방송인으로서 정치권의 유혹에 대한 일종의 독립선언이었다.

사실 그는 지난 총선 때도 정치권의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방송진행자로 ‘잘 나가던’ 정범구씨와 오세훈씨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천을 각각 받아 현재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손씨는 그때도 유혹을 고사했다고 한다.

손씨는 부드러운 표정의 소유자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명쾌한 인터뷰로 대중적 인기가 높다. 최근 한 주간지에서 실시한 전문가 대상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정도의 인기와 경력이면 정치권에서도 군침을 흘릴 만하다.

그러나 과연 방송인이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이 방송과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정치권에 방송인들이 들어가면서 ‘권언(勸言) 유착’이 재연돼 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KBS ‘뉴스 9’의 앵커 출신인 이윤성씨와 박성범씨가 현직 또는 전직 의원으로 정치를 하고 있고, MBC 앵커 출신인 정동영씨와 ‘100분토론’의 진행자였던 유시민씨도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KBS와 MBC의 정치적 독립과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이들은 방송으로부터 얻은 대중적 신뢰를 선거에 이용한 것에 불과하고 정치권은 이들의 대중적 이미지를 이용해 의석을 확보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변신으로 방송사들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방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해왔던 방송사의 ‘간판 인물’이 특정 정당을 대변하게 되었으니 방송사의 중립적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게 아닌가.

정치권도 장기적으로는 좋을 리 없다. 대중적 인기를 업고 등장한 방송인 출신 정치인이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반영하기보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또 다른 이미지 정치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방송은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 신뢰의 기초가 방송의 독립이다. 방송은 마지막까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을 지키면서 오히려 시청자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인도 노력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이른바 정치신인을 찾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방송인들은 개인의 이익보다 방송 전체의 독립성을 고려해야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이 방송은 방송이고, 정치는 정치일 뿐이다.

이창현 교수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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