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경준/'비정규직 실태발표' 왜 미루나

입력 2003-11-09 19:27수정 2009-10-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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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참여정부 출범 후 두 차례 종합 실태조사를 했다. 이번 주 안으로 그 결과가 나오고 노동부가 주관해 개선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노조 간부들의 잇단 자살, 분신으로 노동계가 술렁였던 지난달 29일 권기홍(權奇洪) 노동부 장관은 대국민 정부 합동담화문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약속했다.

담화문의 요지는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 남용을 막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책 마련에 앞서 우선 공공부문의 실태부터 공개하겠다는 것이 권 장관의 약속이었다.

그 후 10여일이 지났다. 하지만 실태 조사를 맡은 기획예산처는 물론이고 공개를 약속한 노동부도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장관이 식언(食言)을 한 셈이다.

노동계는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분신자살한 상황에서도 실태 발표를 미루는 것은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획예산처의 조사결과는 나와 있지만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아직 안나와 이게 나오면 한꺼번에 발표하겠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장관이 발표를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지 ‘발표한다’고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둘러댔다. 실무선에선 결과를 알고 있지만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아 알려줄 수 없다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노동부는 본부 및 산하기관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이 가운데 노조가 결성된 전국고용안정센터 직업상담원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파업 등으로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노동부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腱)’인 셈이다.

노동부가 내부적으로 대책마련이 여의치 않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 발표를 미루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 전국 1만8000여개 기관을 대상으로 두 차례나 실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가 주먹구구식이어서 차마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일부 기관은 비정규직의 개념조차 헷갈리는 직원이 조사를 맡아 상당수의 비정규직을 조사표에서 빠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알리는 것도 정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정경준 사회2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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