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38>捷 徑(첩경)

  • 입력 2003년 11월 9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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捷 徑(첩경)

捷-빠를 첩 徑-지름길 경 登-오를 등

隱-숨을 은 爵-벼슬 작 靈-영혼 영

중국에서 科擧制度(과거제도)가 출현한 것은 隋(수)나라 때이지만 정식으로 성행하기는 唐(당)나라에 들어와서부터다. 당시에는 科擧가 出世(출세)의 登龍門(등룡문)이자 唯一(유일)한 방편이었으므로 그 경쟁이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였다. 그러니 壯元(장원)은 焉敢生心(언감생심), 及第(급제)한다는 것만 해도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려웠다. 자연히 30∼40년씩 재수(?)하는 사람도 흔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五十少進士’(오십소진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나이 오십에 進士가 되면 그래도 젊은 편에 속한다’는 뜻이다.

出世의 어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가까스로 及第해도 관직에 임용되기까지는 많은 難關(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 때에 임용되지 않을 뿐더러 원하는 자리에 간다는 보장도 없다.

당시 盧藏用(노장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역시 進士에 及第했는데 아직 임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하루 빨리 관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꾀를 생각해 냈다. 갑자기 長安(장안)부근에 있는 終南山(종남산)에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상한 풍습이 있었다. ‘隱者(은자)는 모두 고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세속적인 榮達(영달)에는 관심이 없고, 학문만 익힌 사람들이나 隱遁(은둔)을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과연 그의 작전은 주효했다. 오래지 않아 하산하여 高官(고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隱者(은자)로 司馬承楨(사마승정)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진짜 隱者였다. 그 역시 終南山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高官大爵(고관대작)들이 다들 하산하여 관직 맡기를 청했지만 진짜 도사였던지라 거절했다.

한 번은 그가 관리들의 청에 못 이겨 長安에 내려왔다가 또 다시 거절하고 되돌아가던 길이었다. 이 때 그를 성밖까지 전송한 사람은 다름 아닌 盧藏用이었다. 멀리 終南山이 보이는 곳까지 오자 盧藏用이 말했다.

“終南山은 확실히 靈驗(영험)이 있는 산이지요.”

그러자 司馬承楨이 비꼬듯 말했다.

“글쎄, 내가 보기는 出世의 捷徑일 뿐이지….”

자신을 비웃는 말이라는 것을 안 盧藏用은 내심 화가 났지만 어찌 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捷徑’이라는 말은 본디 官吏가 되기 위한 ‘지름길’을 뜻했다. 물론 지금은 굳이 官吏가 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지만 특수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어떤 목적을 빨리 이룰 수 있을 때에 사용하고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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