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36>나는 기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입력 2003-11-06 18:10수정 2009-10-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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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종교학자 닐스 페레의 말이다. 재치 있으면서도 종교의 핵심을 꿰뚫어본 말이다. 기도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도’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비는 것부터 생각한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 부처님 칠성님에게 비는 것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기도다. 인간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염원은 물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자칫 비는 기도, 이른바 ‘탄원기도’가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복에 복을 더해주시기”만을 비는 기복적, 성공 지향적, 출세 제일주의적 기도는 미성숙한 종교적 심성의 발로다.

기도는 비는 기도뿐일까. 찬양 감사 고백 중보(仲保)를 위한 기도도 있다. 또 말이 없는 ‘관조(觀照)적 기도’도 있다. 고요히 앉아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기도할 때 처음에는 기도가 말하는 것인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점점 더 그윽한 경지에 이르면 기도는 결국 듣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예로 ‘예수의 기도(Jesus Prayer)’라는 것이 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이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를 통해 천국에 가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외워 극락왕생한다는 염불(念佛)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기도에도 비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의 종교적 삶이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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