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絃의 마술사, 요요마 첼로독주회…아쉬움도…

입력 2003-11-06 01:16수정 2009-10-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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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요요마(왼쪽)가 피아니스트 캐슬린 스토트와의 협연으로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요요마의 첼로 연주를 두고 ‘깊이가 없다’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불평에 작은 진실이 숨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활을 현에 대고 ‘깊이’ 누르기를 피한다. 볼륨을 높여야 할 경우에도 그는 깊이 누르는 대신 활을 끝까지 써서 빠르게 긋는다. 이런 특징은 기교의 완벽함과 함께 그의 연주를 매끈하게 들리게 하는 요인이다.

5일 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그는 드뷔시, 포레, 프랑크의 소나타 및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중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미’를 선사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그의 앨범 ‘파리 라 벨 에포크(파리의 아름다운 시대)’의 제목처럼 19세기 말 낭만주의가 완숙했던 시대를 상징한다.

그는 이번 연주를 통해 ‘아름다운 시대’를 재현했을까. 그 시대의 특징을 ‘아름다움’으로 한정한다면 그는 성공했다. 포레의 소나타 A장조에서 그는 활의 속도를 바꿔가며 다양한 음색을 빚어냈고 완숙한 완급조절을 통해 청중의 호흡까지 조였다 풀었다 했다. 하늘옷(天衣)에는 바느질선이 없다(無縫)라는 말이 실감났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대’는 ‘세기말’이라고도 불린, 약동하는 신문명의 모순이 축적되는 불안의 시대이기도 했다. 메시앙의 곡은 이런 모순이 종내 최악의 충돌로 폭발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산물이다. 얕게 긋는 요요마의 활은 적절한 포장을 뚫고 나오지 않았다. 절절한 시대의 통증이 표피를 꿰뚫는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는 프랑스와 독일의 중간에 서 있던 벨기에인의 작품이면서 드뷔시, 포레, 메시앙보다 한두 세대 앞선 작곡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요요마는 다른 작품들처럼 지극히 프랑스적이고 감각적인 색채로 채색했다. 그러나 프랑크에게는 좀 더 ‘직선적’인 색깔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빠르고 얕게 긋는 4악장은 프랑크적이기보다는 드뷔시적이었다.

그의 연주 특징을 잘 아는 사람에게 그는 최상의 연주로 보답했다. 관객들이 전원 기립박수로 네 곡의 앙코르를 끌어낸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청중이 이날 들은 것은 ‘요요마 음악의 최상’이자 ‘첼로 기교의 최상’이었을지언정 ‘첼로 예술의 정수’를 꿰뚫은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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