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이번엔 제대로 만들자]<1>바탕부터 새로 짜야

입력 2003-11-03 18:44수정 2009-10-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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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 경기 성남시 분당과 용인시 죽전, 구성을 잇는 용인 수지 로데오거리 앞 죽전고가차로 위에 늘어선 차량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앞으로 10년간 수도권에 주택 30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따라 수도권에는 판교 김포 파주 신도시 외에 대규모 신도시 건설이 잇따를 전망이다. 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1989년 노태우(盧泰愚) 정부가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수도권 5대 신도시를 발표할 당시와 유사하다. 당시 정부도 뛰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단군 이래 최대의 주택 공급이라는 200만가구 건설을 목표로 신도시를 추진했다. 과거의 신도시는 가파르게 치솟던 아파트 가격의 상승세를 멈추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급조되는 바람에 조성 10여년이 지난 지금 교통, 교육, 문화,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더구나 주변에 ‘난개발 광풍’이 몰아쳐 학교나 도로 등 기반시설도 없이 논밭에 아파트단지가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섰다. 분당 등 90년대 5대 신도시가 조성된지 10년, 이제는 삶의 질까지 생각하는 소득 2만달러 시대의 신도시를 생각할 시점이다. 미래의 신도시는 어떤 철학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지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살펴본다.》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신도시 조성과 택지개발로 수도권에 엄청난 물량의 아파트가 공급됐지만 ‘삶의 질’보다는 ‘주택 공급’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어지럽기 짝이 없다.

출퇴근 때면 수도권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들은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기 일쑤다. 2∼3km를 지나는 데 30∼40분씩 걸리는 곳도 숱하다. 도로 때문에 이웃 주민들간에 몸싸움과 법정다툼이 빚어지기도 한다.

신도시가 자족기능을 갖추지 못해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면서 대부분의 주민이 서울만 바라보고 산다. 학교를 생각하지 않고 아파트를 지어 곳곳에서 ‘콩나물 교실’과 ‘컨테이너 교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인근 기존 도시와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아 신도시와 구도시간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큰 틀의 밑그림 없이 부분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신도시를 만들다보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광역적 도시계획을 만들자=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신도시가 5년 만에 몇 개씩 완성되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라고 말한다.

유럽이나 일본 등은 우리보다 규모가 훨씬 큰 800만∼4000만평 규모로 30년 이상의 장기계획을 갖고 신도시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의 신도시가 단기간에 급조되는 것은 인구 및 경제정책, 인구변화 추이, 1인당 주택면적 및 녹지비율 등을 감안해 주택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값을 잡겠다는 단기적인 정책 목표 하나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단국대 이건영(李建榮·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전체를 보고 부분을 계획하는 광역적 개념의 공간계획이 필요하다”며 “수도권 전체의 공간계획을 먼저 수립한 뒤 시간을 갖고 주택공급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득 2만달러 시대의 도래 △주5일 근무제의 정착 △노인인구의 증가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 △질 높은 교육과 문화서비스 등을 감안해 신도시가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도시 로드맵을 만들자=일관성 없고 단기적인 주택정책은 수요-공급의 엇박자를 초래해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교차하면서 주택시장을 불안정 속에 몰아넣었다.

부동산 값이 폭등할 때마다 신도시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정작 신도시가 완성될 시기에는 부동산 값이 안정돼 미분양이 속출한다는 것.

주택가격이 안정돼 있을 때 항시적으로 신도시를 공급해야 주택 가격의 이상폭등을 막고 또 주택가격이 올랐을 때 바로바로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도시 조성에 들어가기 전에 타임스케줄을 포함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도시와의 윈-윈 전략을 수립하자=신도시 개발은 기존의 도시를 이류(二流)로 만들고 지역간 위화감을 조성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분당은 성남 구시가지를, 일산은 고양의 나머지 지역을 이류로 만들었다.

경원대 송태수(宋泰洙·도시행정학) 교수는 “신도시 개발 때 인구밀도가 높은 구시가지 인구를 신도시로 이주케 하고 구도심의 재개발을 추진하면 양측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들의 마인드 변화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기구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李相大) 박사는 “중앙정부와 서울 경기 인천시가 참여하는 가칭 ‘수도권 기획단’을 만들어 20∼30년 단위의 장기 신도시 계획을 짜도록 해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원=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신도시 난개발의 역사▼

왜 또다시 신도시인가?

1960∼70년대 정부의 수도권 정책은 인구의 억제 내지 분산정책이었다. 71년 서울 주변의 녹지 대부분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은 것도 도시의 평면적 확산을 막고자 한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신도시는 76년부터 11년 동안 개발된 경기 안산(당시 반월). 이곳은 서울 여기저기에 흩어진 오염배출 업소를 한군데 모아놓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탓에 요즘 개념의 신도시와는 거리가 있다.

1989년 4월 노태우(盧泰愚) 정부는 그동안의 수도권 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획기적인 발표를 했다. 분당과 일산 등 서울 주변 5개 신도시 건설을 포함한 주택 200만가구 건설 계획이 그것.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단시간에 대규모 택지 공급이 필요했지만 택지 확보가 쉽지 않자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결정한 것이다.

5개 신도시가 급조되는 가운데 수도권 정책은 또 한번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김영삼(金泳三) 정부가 규제완화와 부족한 택지 공급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준농림지에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면서 수도권 전체가 개발 붐에 휩싸였다.

1994∼2002년 택지 개발에 따라 경기도 내에서 농림·준농림지역이 도시·준도시지역으로 바뀐 것이 총 521km². 이는 수원 성남 고양을 합친 것(530km²)과 맞먹는 규모다.

준농림지의 개발은 아파트 공급을 늘리긴 했으나 논밭 한복판에 아파트만 우뚝 서 있는 이른바 ‘나홀로 아파트’를 만들었고, 교통과 교육 인프라가 없는 기형적 도시를 양산했다. 야산을 까뭉개는 마구잡이 택지개발은 홍수와 산사태 등 각종 재난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대규모 신도시 건설 정책으로 U턴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파트 공급원이던 준농림지 정책이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발효와 함께 금년부터 폐기된 마당에 어차피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계획적인 개발이 가능한 신도시 건설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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