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여자의 힘’ 아직도 모르나

  • 입력 2003년 11월 3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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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보에 A대기업의 공채 서류전형 내부 사정기준이 보도된 뒤 많은 e메일이 쏟아졌다.

‘현실적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줬다’는 격려에서부터 ‘왜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는 기사를 실어 울화통 터지게 만드느냐’는 질책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자대학 출신이 겪는 취업차별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 데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편지였다.

A기업은 국내 최고의 여성 사학으로 꼽히는 이화여대에 80점을 줬다. 등급으로 따지면 1등급(100점)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2등급(90점)인 중앙대 아주대공대 인하대공대 등에 이어 3등급이다. 또 다른 명문 여대 2곳은 이보다 못한 4등급(70점)으로 분류됐다. 실제 학교의 이미지나 학생들의 실력에 비해 해당 기업이 지나치게 저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기업들이 여성의 채용을 꺼리는 내부적인 논리를 종합해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힘든 일을 못한다’거나 ‘생리·출산휴가 등으로 골치가 아프다’는 것 등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편견은 매우 노골적이고 심각한 수준이다.

과연 여성이 힘든 일은 못하면서, 휴가만 챙겨먹는 골칫덩어리인가? 미국의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이나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보다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이 거칠고 힘들다는 언론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최근 수습기자 합격자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다. 이는 언론사가 여성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여성 지원자의 능력이 남성 지원자들과 대등하거나 월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습기자 시절 하루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 강도로 평가해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진부한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25∼49세 여성의 취업률은 전통적으로 남성우월의식이 강한 터키 멕시코 그리스 등에 이어 6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취업정보제공업체인 스카우트가 최근 대학 4학년생 2322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률 조사에서도 남학생은 17.0%를 기록한 반면, 여학생은 불과 5.5%만이 취업 장벽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에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제발 편견을 버리고 새로 사회에 배출되는 젊은 엘리트 여성들을 바로 보시라고. 그러면 활력이 넘쳐나는 당차고 똑똑한 인재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될 것이라고….

이훈 사회1부 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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