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추억을 말한다]'살인의…' "범인 꼭 보고 싶습니다"

입력 2003-09-03 16:31수정 2009-10-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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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촬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던 ‘살인의 추억’ 출연진.동아일보 자료사진
《'영화는 스크린을 떠나도 죽지 않는다' 관객을 사로잡은 한 편의 영화.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 명장면은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영화의 추억을 말한다' 시리즈 첫 회로 '살인의 추억'을 찾았다. 이 작품은 상반기 영화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4월 25일 개봉된 뒤 510여만명(전국 기준)의 관객을 기록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80년대의 암울하고 무기력했던 시대를 되돌아봤던 이 작품은 오랜만에 비평과 관객으로부터 동시에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배우 송강호(36), 봉준호 감독(34), 제작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43)등 영화의 주역들을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싸이더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차승재=조금 전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왔다갔어. ‘송 배우’와 ‘봉’ 온다니까 우리 식구들이 왜 거기 있느냐고 묻더라. (청어람은 ‘살인의 추억’을 배급했고 봉 감독의 차기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다.)

▽봉준호=청어람에서 배급한 ‘바람난 가족’도 잘된다면서요.

▽차=응, 거기도 바람났어.

▽차=동아일보에 실렸던 박두만 형사(송강호)와 범인(Mr.X)의 가상인터뷰가 재밌었는데. ‘살인의 추억’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기사야.

▽봉=제 입장에서 기억에 남는 기사요?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전….

▽차=(으하하) 갑자기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인데. 취조실 분위기야.

만약 ‘살인의 추억’이 없다면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연 송강호. 감독 봉준호. 제작 차승재

▽차=봉 감독은 아마 시나리오 쓰면서 나한테 들들 볶이고 있을 거야.

▽봉=아이 도시락 챙기면서 집에 있겠죠. 얼마 전 와이프가 처제랑 같이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더운 것 못 참아서 안 갔어요. 할 일 없으면 아이랑 집 보는 게 평소 일이죠.

▽차=부부 사이가 안 좋아(웃음).

▽송=‘살인의 추억’이 없었다면 놀고 있었을 거예요. 쉴 때는 주로 집 앞 공원에서 뛰어요. 모자 푹 눌러쓰고 뛰면 송강호인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차=이달 중순 베트남 출장 가는데. 나는 완전히 ‘육수 기계’거든. 큰일 났어. 참 대전교도소의 사형수가 자신이 화성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한 건 어떻게 됐어.

▽봉=신문 보니까 해프닝으로 끝났어요. 그 사형수의 혈액형이 O형이어서 가능성이 없어요. 90년대 초에도 한 무기징역수가 자신이 화성 범인이라고 주장한 일이 있었지요. 결론은 아니었죠. 7일 7번째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난답니다.

▽송=봉 감독, 완전히 전문가 다 됐어.

▽차=그래 술 말고 ‘밥들은 잘 먹고 다니십니까.’ 박두만(송강호)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는 한동안 화제였는데….

▽봉=지금 영어 자막 최종 감수를 하고 있는데 그 대사 땜에 또 논쟁이 있어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제가 강호 선배에게 뭔가 결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박두만만 할 수 있는 말을. ‘모르겠다’와 ‘가라, 이 ××야!’라는 대사 사이에 의표를 찌르는 말이 필요해 이 말을 했어요. 영화 촬영 막바지가 되면 감독보다 그 캐릭터로 오래 생활한 배우가 그 인물을 더 잘 알거든요.

▽송=‘밥은 먹고 다니냐’가 처음엔 좀 엉뚱하게 느껴졌어요. 결과론인데 ‘네가 그 짓을 하고도 어떻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식으로 상식적으로 했다면 울림이 적었을 겁니다. 나중에 어떤 분은 박두만이 용의자에게 측은함을 보인 것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하더군요. 그 순간만은 인간 대 인간으로 던지는 말이라는 거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난 영화 속 현균(박해일) 한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터널의 어둠 속에 존재하는 실제 범인에게 말하는 기분으로 연기했어요.

▽봉=사실 그 샷을 네 번 찍었어요. 3번째까지는 그 대사가 없었고, 4번째에 시도했죠. 너무 일찍 공개하면 제작진 사이에 논쟁이 심할 것 같아 강호 선배하고만 약속하고 그대로 감행했죠. 처음에는 촬영장에서 여러 사람이 엉뚱하다며 웃었어요.

▽송=난 사실 처음 ‘가라’라는 대사 한마디에서 금광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짧고 철학적인 느낌도 들고. 난 목표 달성했다며 돌아서는데 봉 감독이 ‘가라’도 좋지만 뭔가 하나가 더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뒤 휙 사라져 버렸지요. 황당했어요.

▽봉=그게 아마 경남 사천의 피자집이었죠.

▽송=감독은 그게 성에 안 찼던 거죠. ‘봉준호의 정교한 심리전’이랄까. 거기에 배우들이 다 휘말렸어요.

▽봉=제목도 논란이 있었죠. 원작 제목인 ‘날 보러와요’와 ‘살인의 추억’으로 팽팽하게 맞섰죠. 정석이라면 ‘살인의 악몽’이 맞죠. 우리 제목에는 살인이 결코 추억이 돼서는 안 된다는 역설법이 깔려 있죠.

▽송=‘살인의 추억’도 처음엔 이상했어요. 문학적인 제목으로 느껴졌어요.

▽봉=이 작품의 모티브는 ‘얼굴’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화성 연쇄살인은 범인을 못 잡은 사건 아닙니까. 영화적으로는 범인의 얼굴을 보고 싶은 데 끝까지 못 보는 거죠. 박두만, 강호 선배가 계속 사람들 얼굴을 보잖아요. 얼굴로 시작해서 얼굴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도 박두만이 용의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 패배를 인정하죠. 엉뚱한 질문도 오갔다. 기자가 봉 감독에게 IQ가 얼마냐고 물어봤다. ▽봉=141인데…. 고 1때 한번 검사했어요. 놀라지 마세요. 그 때 커닝 했어요.

▽차=와. 봉은 굉장히 복잡하고 피곤한 친구죠. 그래도 나 세 자리야.

▽송=비평 쪽에서 과찬과 격려의 말이 많았죠. 그중 한 네티즌의 20자평이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영화의 어떤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된 것 같아요.

▽차=봉 감독에게 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싶으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 사실 즐겁고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잖아.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이 느낀, ‘보이지 않는 범인’과 무기력한 시대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꼈던 것 같아.

누군가 “그래 우리도 밥은 먹고 다녀야지”라고 했다. 세 사람의 만남은 약간의 술을 곁들인 자리로 이어졌다. 송강호가 출연한 CF를 떠올려 “우리 ○○주 먹어야 하나”란 얘기가 나왔다. 결론은 ‘50세주’였고 봉 감독의 성(姓) 등 영화 밖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차=4월과 5월에 1년치 술을 다 먹은 것 같아. ‘지구를 지켜라’ 시사회가 끝났는데 기자랑 평론가들이 ‘영화 정말 좋다’고 해 기분 좋아서 먹었지. 근데 관객이 10만명밖에 안 들었어. 화가 나 술 먹었지. 조금 있다 ‘살인의 추억’ 시사회가 있었어. (허허) 평이 좋아서 다시 먹었고 관객이 많이 들어서 또 먹었어. 난 이 작품이 우리를 구해줄 작품이라고 봤어. 송강호씨 캐스팅되고 시나리오를 보니까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송=봉 감독이나 차승재 대표와 함께 영화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살인의 추억’을 만난 것 자체가 내 연기인생에서 행복한 추억이죠.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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