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蘇지역 한인신문 ‘고려일보’ 80돌 대규모행사

  • 입력 2003년 7월 1일 0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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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두번째부터 신 블라디미르 ‘아리랑’ 주필, 박기정 언론재단 이사장, 채 유리 고려일보 주필. -김기현특파원
왼쪽 두번째부터 신 블라디미르 ‘아리랑’ 주필, 박기정 언론재단 이사장, 채 유리 고려일보 주필. -김기현특파원
“우리 신문은 강제이주와 탄압, 유랑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60만 고려인(구소련지역 거주 한인)의 눈물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구소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신문인 고려일보 창간 80주년을 맞아 6월 28일부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학술대회와 공연 등 대규모 기념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채유리 고려일보 주필은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기정) 주최로 열린 ‘고려인과 언론현황’ 토론회에서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말과 얼을 지키는 신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기정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 8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만도 자랑스럽다. 고국에서도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겠다”고 격려했다.

고려일보의 역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반영한다. 고려일보의 시초는 3·1운동 4주년을 맞아 1923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한글신문 ‘아반가르드(선봉·先鋒)’. 1920∼30년대 극동지역에서 발간됐던 ‘투쟁’ ‘원동신문’ 등 17개 한인신문 중 이 신문만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다. 한때 발행부수가 1만부까지 이르렀던 이 신문은 1937년 극동지역 한인 10만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는 과정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소련 당국은 강제 이주 전에 한인지도자들을 숙청하면서 이 신문의 주필 2명을 차례로 체포해 ‘일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총살했고 나중에는 편집국 기자 전원을 처형했다. 그러나 동포들은 중앙아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말 신문 복간부터 준비했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황동욱 주필의 주도로 재발간 작업이 진행됐으나 황 주필 역시 복간호를 보지 못하고 현지에서 체포돼 처형됐다. 결국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뜻의 ‘레닌 기치’라는 이름으로 다시 신문이 나왔다. 주 5회 발행의 일간지로 발돋움했고 직원도 60명으로 늘어났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고려일보로 새 출발을 했으나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소련해체 이후 소련 전역에 배포되던 신문이 카자흐스탄의 한인 신문으로 축소된 것. 또 극심한 경영난과 함께 한글을 읽는 독자 수도 급감했다. 이에 따라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섞어 쓰는 주간신문으로 전환되고 부수도 3000부로 줄었다.

그러나 이 신문 출신 동포 언론인들이 모스크바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한인 신문을 발행하는 등 고려일보는 여전히 동포 언론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고려일보는 2001년 위암 장지연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알마티(카자흐스탄)=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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