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특사 내주 방북]'惡의 축' 벗고 다시 손잡나

  • 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58분


다음달 3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급속히 냉각됐던 북-미관계가 해빙될 수 있을까.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관계 복원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북-일 정상회담에서처럼 파격적인 제안이나 양보를 할지 여부이다.

▽관계 복원 가능성〓학자들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말기였던 2000년 10월이 한국전쟁 이후 북-미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다고 지적한다. 당시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전격 방문(10월 9∼12일)했고,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까지 평양을 방문(10월 23∼25일)함으로써 양국은 반세기의 적대감을 씻고 마침내 정상적인 관계 수립의 초입에 들어선 듯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양국관계는 일순간에 얼어붙었고 이후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까지 규정할 정도였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공화 민주 양당 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이라크 공격에 대해 우리는 곧 한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워싱턴AP연합

뉴욕타임스가 26일 “미국의 특사파견은 대북정책의 중대한 변화”라고 보도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타임스는 이번 켈리 차관보의 방문을 통해 미국과 북한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라크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혐오하는 정권과도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을 수 있고, 신의주 행정특구 설치 등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미국의 지원과 협조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대(對)이라크 전쟁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 이라크를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타임스는 지적했다.

그러나 특사파견 만으로 북-미관계가 단숨에 2년 전 수준으로 복원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북한을 ‘불량국가’로 보는 부시 행정부의 근본 시각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 ‘히든 카드’ 내놓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뭔가 파격적인 제안을 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놓고서도 일본인 납치 사실을 솔직히 시인함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선 대량살상무기(미사일) 문제에 대해 뭔가 ‘성의’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이미 고이즈미 총리에게 “미사일 발사시험 유예조치를 내년 이후에도 연장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미국에 대해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수출 문제에서도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또 제네바 합의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경수로 핵심부품 전달 단계에서 실시하게 돼 있는 과거 핵활동에 대한 검증을 미국의 요구대로 앞당겨 수용하겠다고 밝힐 수도 있다. 북한은 99년 금창리 지하핵 의혹 시설에 대해서도 처음엔 현장 검증을 거부하다 나중에 이를 수용했다.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미국과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을 수준에서만 성의를 보이고 결정적인 ‘히든 카드’는 향후 대화의 진전상태를 보아가며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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