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사이버금융에 승부 걸겠다"

  • 입력 2000년 10월 15일 19시 08분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이명박(李明博·59) 전 현대건설 회장이 경제계로 돌아왔다. 사이버금융의 기본틀을 확 바꾸겠다며 증권중개회사 e―뱅크를 설립한 것이다. 98년 4월 선거법 위반 문제로 의원직을 반납한 지 2년 반만의 일이다. 주변에서도 “이명박이 결심했다니 뭔가 작품을 낼 것”이라며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인터뷰 약속 시간도 이명박 스타일 그대로였다. 일요일인 15일 오전 7시반.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대표이사는 교회 예배시간에 맞춰 일어서기까지 2시간 이상 쉴새없이 말을 쏟아냈다.

“설립허가를 신청한 뒤 6개월만에 예비인가가 나왔어요.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이니 그동안 금융 신상품이 두 번은 나왔다 들어갔을 시간인데….”

이대표는 첫마디부터 기대만큼 주변상황이 빠르게 전개되지 않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대표는 왜 이 시점에 사이버 금융으로 새 승부수를 던졌을까.

“한국에 없는 새로운 시스템과 기법을 제시하고 싶어요. 그동안 한국금융은 전당포만도 못했다고 늘 이야기해 왔죠. 담보 잡을 곳은 못잡고 안잡아도 될 곳은 담보를 요구하고….”

이대표의 첫 목표는 ‘사업 첫해부터 이익내기’. 늘 그랬듯이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꼽는 일이다.

“감독당국에선 ‘첫해 흑자’를 근거로 사업계획서를 냈더니 ‘현실적인 계획’을 내라고 하더군요. 2001년 말이면 누가 맞는지 드러납니다. 물론 통상적인 사이버거래에 치중하면 초기 투자 때문에 당연히 적자죠.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업을 벌일 겁니다. 현대시절에도 그랬지만 3, 4년 지나서야 흑자를 낸다고 생각한다면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표가 꼽는 흑자비법은 아비트리지(차익) 거래. 미국계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99년 초 연 수익률 120%대를 기록한 김경준 BBK 투자자문 사장(34)을 영입했다. 이대표는 김사장에 대한 기대가 몹시 큰 눈치다. “김사장이 지난해 BBK 설립 이후 한국증시의 주가가 60% 빠질 때 아비트리지 거래로 28.8%의 수익률을 냈다”고 소개하면서 연방 김사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한국금융시장이 외국인의 텃밭이 돼버렸어요. 우리는 일본 대만 자본시장에 진출합니다. 필요한 라이선스를 따 뒀습니다.”(김사장)

이대표는 오랜 친구인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의 70년대 ‘낭인 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그때 고물 카메라를 들고 전세계를 떠돌았어요. 물론 관광지가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제시할 경쟁국의 산업현장을 찾았어요. 현대자동차도 단체 관광객 사이에 끼어 두 차례나 공장을 둘러봤어요. 오늘의 마하티르 총리를 만든 원동력이죠.”

이대표는 자신을 산업사회시절 ‘절반 이상’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디지털시대의 나머지 반쪽 승부도 치열하게 치르겠다는 마음이다.

이대표는 자칭 디지털사고 소유자다. 누군가가 전자우편을 하루에 얼마나 쓰느냐는 질문으로 자신을 아날로그형 기업인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대표는 그동안 ‘정치를 그만둘 것인가’라는 질문을 들어왔다. 그의 답변은 지금은 ‘정치 휴직기’라는 것. 꿈을 접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어떤 의미 있는 일로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업이건 정치건 일단 시작하면 목숨만 빼놓고 모든 것을 걸겠다”는 그의 다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홍찬선·김승련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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