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새章]북녘땅에도 큰 충격이…"최고지도자 변신 쇼크 클것"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29분


“평양 시민들은 대단히 흥분한 상태에 있습니다.”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14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2차 정상회담에 앞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일종의 ‘충격’을 받았듯이 북한 주민도 ‘미제(美帝)의 주구(走狗) 파쇼 도당’으로 비난하던 김대통령 등 남한 지도부의 방북에 비슷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또 ‘교시’할 때나 얼굴을 보이던 김위원장이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김대통령과 환담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북한 주민들의 ‘충격파’는 곳곳에서 엿보인다.

평양 방문자들은 주민들이 정상회담 소식을 들은 뒤 “인차(곧) 통일이 됩니다”라며 기대감에 부풀었다고 전하고 있다.

15일 강원 동해시에 도착한 금강산 관광객들은 “북한 관리원이 ‘정상들이 만났으니 우리도 친해 봅시다’라며 먼저 악수를 제의했다” “한 관리원은 ‘장군님과 김대통령이 만나는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고 전했다.

북한은 적대적이었던 과거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위원장 등의 환대는 차치하고라도 북한의 신문과 방송은 72년 7·4공동성명, 92년 남북 고위급회담 때와 크게 다르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1, 2개면을 할애해 남북간의 교류를 보도했으나 이번 정상회담은 6개면 가운데 5개면을 할애했으며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사진을 11장이나 실었다.

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 발효를 위한 제6차 고위급 회담 때 북한은 17분간 이 장면을 TV로 생중계했지만 평양의 거리는 한산했고 평양 시민들도 대표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는 북한 주민들을 더 흥분시킨 것으로 보인다. 노동일보는 4월10일 남북 정상회담합의 사실을 간략히 보도한 뒤 이틀 뒤인 같은 달 12일에는 ‘남조선 파쇼 미제 식민지’라는 용어를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지만 2달 뒤에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이같은 ‘반전’도 북한 주민을 더 혼란스럽게 했을지 모른다.

박원순(朴元淳) 참여연대 사무총장은 “북한은 통제된 사회여서 최고 지도자의 변한 모습이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李東勳)자유총연맹운영본부장은 “남북 모두 국민들의 심적변화가 많이 일어날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도 북한 주민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우리보다 덜 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분석.

이민복씨(44)는 “북한은 김대통령을 민주인사이자 전두환 파쇼 정권의 피해자로 묘사해 북한 주민들은 김대통령에게 친근감을 갖고 있다”면서 “북한 주민들의 충격은 남한 국민들이 김정일에게 느끼는 충격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명도(康明道·42·경민대 교수)씨는 “북한이 김위원장이 김대통령보다 낫고 통일을 실현하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해 북한 주민의 단결을 끌어내려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의 ‘충격’은 향후 정상회담의 진전과 북한 지도부에 따라 언제든지 ‘적대감’으로 돌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통일문제연구소 전현준(全賢俊)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은 통일이 되면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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