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이야기를 읽고]컴퓨터세대 '채팅같은 글쓰기'참신

입력 1999-08-03 19:27수정 2009-09-2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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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투스, 이제 당신은 저의 이 세 가지 반론을 들으셔야 합니다. 제가 전개해나갈 이 반론들은 당신의 잘못에 대한 저의 질책인 동시에 당신의 대의에 대한 저의 비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연극 대사가 아니다. 동아일보 한길사 공동주최의 ‘로마인 이야기’독후감 공모대회 우수작의 한 대목. 이 글의 필자인 배운서군(서울 둔촌중 3년)은 카이사르 암살자인 부루투스와 마주 앉아 논전을 벌이듯 그가 간과한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지난달 29일 최우수작 등 40편의 수상작이 발표된 ‘로마인 이야기’독후감공모. 응모자격이 중고교생이라 투고된 글들은 ‘멀티미디어세대’ ‘컴퓨터키드’로 불리는 청소년들의 글쓰기방법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책이 어떤 내용인가보다는 내가 무엇을 재미있게 읽었는가라는 주체가 뚜렷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사위원 이광주 인제대명예교수(서양사)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해 봤지만 대부분 내용을 충실하게 요약하는데 비해 이번 응모작들은 문장구성방식과 발상이 개성적이었다. 책 내용보다는 자기를 표현하는 글이었다”고 평했다.

수상작 40편에 두드러지는 첫번째 특징은 카이사르, 네로 등의 등장인물이나 저자 시오노 나나미에게 띄우는 편지글이 적지 않다는 것. 시공간을 뛰어넘어 상대와 직접 말하는 듯한 태도는 컴퓨터공간의 ‘가상현실’게임이나 통신공간 상의 채팅을 연상시킨다. 가상체험에 익숙한 세대들이 그 방식으로 독후감의 진부한 양식을 바꾸어 놓은 셈.

두번째 특징은 ‘내 주장’이 분명하며 책의 장단점을 찾아내는 비판적 독서의 태도가 두드러진다는 것. 유럽에서 부모와 함께 7년간 살고 왔다는 손길환군(서울 예원학교 3년)은 ‘저자는 해바라기처럼 서양을 바라보며 로마로 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로마에 대해 책을 쓴다면 나나미같이 로마예찬 일변도로 쓰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족답게 청소년들은 종횡무진했다. ‘초인’과 ‘영웅’을 희구한다는 공통점에서 철학자 니체와 시오노 나나미를 비교하는가하면(서울 인헌고 3년 박정연), 원로원의원들의 아내 3분의 1을 정부로 삼았지만 한 번도 원한을 사지 않았던 카이사르가 ‘옛 애인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미숙한 솜씨를 나무라는 듯하다’(서울 서울고 1년 안정환)고 꼬집기도 했다.

글속에 자기가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은 책 속에 담긴 지식을 내것으로 소화해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민석군(제주 대기고 3년)은 ‘역사는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이 돼 경험하듯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암시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는 올바른 길이 아닐까’라고 제안했다.

한길사는 좋은 독후감의 모범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에서 이번 수상작들을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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