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 新黨창당론, 90년 3黨합당과 5가지 닮았다』

입력 1999-07-20 19:24수정 2009-09-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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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 진영의 이른바 ‘2여(국민회의와 자민련)+α’방식의 신당창당론은 여러 측면에서 90년 1월의 3당합당을 연상시킨다.

가장 닮은 꼴은 ‘소수파 정권’이라는 정권의 한계를 탈피하기 위한 정계개편론이라는 점이다.

90년 1월 당시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합당해 ‘거여(巨與)’인 민자당을 창당한 것도 노태우(盧泰愚)정권이 여소야대(與小野大)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결행한 고육책의 성격이 강했다.

현재 DJP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신당창당론도 현 공동여당이 산술적으로는 여대(공동여당 160석, 야당 135석)이지만 ‘한 지붕 두 살림’인데다 국정운영의 고비마다 ‘소수파 정권’의 한계를 느껴온데서 출발한 흐름이다.

정계개편론의 핵심 화두가 내각제인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들도 3당합당 때와 비슷하다. 3당 합당 당시 노태우대통령과 YS, JP는 내각제 합의각서를 교환했고 현재의 신당창당론도 JP의 내각제 개헌유보 발언 이후 급격히 추진됐다. 아니 내각제를 고리로 공동정권을 탄생시킨 것 자체가 신당창당론의 연원(淵源)인 셈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를 잇달아 면담, 신당창당론의 ‘매파(媒婆)’역을 한 것으로 알려진 자민련 박철언(朴哲彦)부총재는 3당합당 당시에도 막후조율사였다.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는 노대통령이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인’으로 발탁한 인물이었다. 다만 당시 공화당쪽의 합당 주역이었던 자민련의 김용환(金龍煥)전수석부총재가 현재의 합당논의에서는 ‘반대파’로 나섰다는 게 정치무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가지 ‘밀실담합’의 양상을 띠고 있는 점도 닮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신당창당과 관련, “밀실에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전혀 반대다. 17일 DJP 극비회동에 대해 관계자들은 “부부동반의 만찬자리였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회동 이후 신당창당론이 급격히 제기되기 시작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3당합당 당시 DJ는 ‘호남 고립화 음모’‘평민당 고사(枯死)전략’이라며 극력 반발했었다.

신당창당이 보다 가시화할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도 ‘한나라당 고사전략’ ‘PK(부산 경남) 고립화 음모’라며 반격에 나설 게 분명하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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