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김우중회장 영욕의 30년

입력 1999-07-19 18:27수정 2009-09-2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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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어차피 자동차사업이 정상화된 이후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만큼 향후 6개월은 ‘명예로운’ 퇴진을 결정짓는 마지막 고비가 될 듯하다.

67년 무일푼으로 대우실업을 창립, 재계 서열 2위의 대그룹으로 키워온 김회장. 샐러리맨들의 가슴 속에 ‘김우중신화’를 깊이 새겨넣은 김회장답게 30여년 동안 엄청난 굴곡을 거쳐왔다.

첫째 위기는 80년 맞닥뜨린 신군부의 등장. 당시 대우는 고 박정희(朴正熙)대통령과 김회장 부친이 맺은 사제(師弟)의 연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수출드라이브에 편승, 혜성처럼 떠오른 신흥재벌이었다.

김회장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신군부의 강압에 밀려 사재 200억원을 복지재단(82년 대우재단으로 개칭)에 출연했다. 사재출연 이후에도 김회장은 ‘지배주주’에 만족하지 않는 ‘일벌레’로, 결재나 하는 회장보다는 현장에서 뛰는 경영인으로 계속 존재를 부각시켜왔다.

두번째는 89년 급격히 악화된 대우조선의 자금난. 김회장은 이때 대우증권 주식 246만주를 대우전자 대우통신 오리온전기 등에 현물출자, 기사회생시켰다.

김회장은 95년 노태우(盧泰愚)비자금 사건으로 법정에 선 이후 97년 나라 전체가 외환위기를 맞을 때까지 국내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줄곧 세계경영을 지휘해왔다. 1년중 280일 정도를 해외에서 보냈을 정도.이같은 풍부한 국제경험을 토대로 김회장은 97년 초 청와대에 “수출경쟁력에 문제가 있다. 자칫 외환위기가 터질 수 있다”고 진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막상 본인은 확대경영에 따른 그룹 전체의 유동성위기를 간과하고 말았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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