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국민회의총재대행 『정국수습 최선다할 것』

  • 입력 1999년 7월 12일 19시 25분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신임 총재권한대행은 12일 당무지도회의 인준절차가 끝난 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불렀다. 명색이 집권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었던 만큼 난마(亂麻)처럼 얽힌 정국을 풀어내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성이었다.

그러면서 이대행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정국을 수습하라는 뜻을 받들어 당사에 야전침대를 놓고 일한다는 자세로 일할 각오”라고 말했다.

―언제 통보를 받았나.

“오늘 오전 7시15분경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연락을 해오셨다.”

―대행에 임명된 소감은….

“실타래처럼 얽힌 정국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답답한 심정이다. 그동안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4강외교를 성공리에 완수해 국제적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다만 국내정치가 문제다.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받들어 모시겠다.”

―대행에 지명될 것으로 예상했나.

“전혀 몰랐다. 신문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을 평가하면서 나에 대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낮음’ ‘JP와의 관계―불편’으로 썼기에 나는 안될 것으로 생각했다.”

―JP와 관계가 소원한가.

“김종필(金鍾泌)총리와 껄끄러운 관계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총리는 과거 공화당 시절 내가 당의장으로 모셨던 분이다.”

―공동여당간, 그리고 대야관계는 어떻게 해나갈 생각인가.

“여―여(與―與)관계는 명실공히 공동운명체인 만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조그마한 오해도 없도록 하겠다. 또 최근 여야대립 상태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만큼 대결보다는 화합을 통해 생산적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자신이 있다. 사심(私心)없이 경제와 나라를 살리는 데 힘을 합쳐 노력하겠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63년 입문…특유의 행보▼

올해 67세인 이대행은 대구출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정치부기자로 재직하다 5·16 직후 “박정희(朴正熙)최고회의의장이 옳다”며 공화당에 입당했다.

6, 7, 10, 11, 12, 14, 15대 의원을 지내는 동안 한국국민당총재 민자당고문 신한국당대표 국민신당총재 등을 역임했다. 80년대 권위주의 시절, ‘문민정치(文民政治)’라는 말을 제창하기도 했던 이대행은 ‘민심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쓴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

63년 6대 국회 때 공화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숱한 정치유전(流轉)을 헤쳐왔지만 그는 고비마다 특유의 ‘정치관(政治觀)’과 행보로 고비를 넘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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