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입력 1999-07-09 19:52수정 2009-09-2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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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 그러나 이 부제만으로 자전에세이의 저자 서진규의 삶을 다 말할 수는 없다.

한 여성의 삶이 그토록 처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역경을 어떻게 그렇게도 잘 이겨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5월9일 저녁 KBS 1TV 일요스페셜에 소개되어 시청자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주인공. 가난, 그 지긋지긋함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던 가족사. 낯선 땅 미국에서의 두차례에 걸친 결혼과 이혼. 험난한 미국 군인의 길. 절망의 와중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꿈과 희망….

이 책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좌절 앞에서 순간순간 몸서리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눈물 겨운 헌사(獻詞)다.

그의 이력을 보자. 48년 부산생. 아버지는 엿장수. 가발공장 여공, 엑스트라 영화배우, 골프장 식당 종업원, 여행사의 경리사원, 그러면서도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려 했다. 영어학원 수강생. 그리고 판잣집. 멋진 남자와의 사랑. 느닷없이 찾아온 실연의 아픔. ‘나는 허물어졌다.’ 머릿 속엔 온통 죽음과 자살뿐.

그렇게 몇달. 우연히 접한 신문광고, ‘미국 가정집 식모를 구합니다.’ “그래, 탈출이다.” 71년 단돈 100달러만 쥐고 무작정 올라탄 미국행 비행기. 밤에는 뉴욕의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낮에는 대학생. 합기도 7단인 한국 남자와의 열애와 결혼. 미국에 건너간지 4년만, 그의 나이 스물일곱.

그러나 무능력한 남편. 게다가 폭력까지. 대학 포기. 아이를 한국 친정에 맡기고 군 입대. 이혼. 한국 독일에서의 군대 생활. 열살 연하의, 준수한 미국인 청년 장교와의 열애, 결혼. 양녀를 성폭행하는 남편. 이혼. 동생의 죽음과 실종….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나날들. 고민 끝에 90년 소령으로 예편. 그렇게도 갈구해오던 학문의 길 선택. 지금은 하버드대대학원 동아시아언어학과 박사과정. 이제 그의 나이 쉰하나. 그의 딸 역시 하버드대생.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곧 죄악이다” “죽을 각오로 꿈을 키웠다” “꿈은, 이뤄지기 전까지는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만든다”고 되뇌는 그. 믿기 어려운 그의 말, 그의 삶. 그 담담함이 오히려 읽는 사람을 주눅들게 할 정도다. 그의 삶은 남성우월주의를 극복해낸 한 여성의 홀로서기라는 점에서 또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그렇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매 순간순간의 절망과 희망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에 누가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삶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으려는, 그의 진실함에 대한 입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감동의 여운이 더 길게 남는지도 모른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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