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빠진 「호랑이 특집」 아쉬움…EBS 「야생의…」

  • 입력 1998년 1월 5일 08시 09분


무인년 새해 TV마다 호랑이 예찬으로 법석이다. 늠름한 기상과 영험을 지닌 신비의 동물이라며. 기댈 곳 마땅찮은 나라 형편때문에 호랑이가 가졌을 법한 신통함에서라도 위안을 얻을 양. 덕분에 새해 첫날 호랑이는 방송가를 장식했다. 이 가운데 EBS가 1일 밤 내보낸 다큐멘터리 ‘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 생포기’는 제목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동물원이 아니라 눈덮인 원시림을 휘달리는 호랑이를 보게 됐다는 기대와 숙연함. 그런데…. 이 프로는 아쉬움부터 줬다. 제목만큼 극적이지 못했다. 내용이 빈약했다. 생포된 호랑이는 겨우 20개월 짜리. 호랑이는 수명이 40∼50년이고 3년이 지나서야 스스로 사냥을 다니므로 아직 한참 새끼다. 그것도 대여섯마리 사냥개에 몰려 오도가도 못하는 초라한 몰골….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게 이런 장면이었을까. 차라리 몰래 카메라에 찍힌 야생의 성인 수컷 호랑이가 훨씬 시청자들을 압도하는 듯했다. 왜 그랬을까. EBS가 방영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이 다큐는 원래 호랑이 3부작과 아무르 표범 등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중의 하나로 5명의 제작팀이 1년내내 러시아와 중국에서 한창 준비중인 것이다. 그런데 새해 첫날 시청자에게 호랑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때문에 박수용 팀장이 회사의 호출을 받고 급거 귀국, 서둘러 편집해야만 했다. 물론 제작진의 노고만큼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눈덮인 타이가 수림 지대를 19일 동안 헤매며 추적하는 열정과 집념이 아니었다면 새끼 호랑이를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리라. 스키와 나뭇잎을 깔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혹한속에서 겨우 새우잠을 청하는 장면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이 시리즈는 기획단계에서 이미 방송위원회의 대상으로 선정돼 1억원의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그만큼 ‘좋은’프로라고 인정받았고 제작진도 그에 못지 않게 프로 근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작품이 방송사의 서두름과 조바심 때문에 제작진의 노고만 보여주고 설익은 채 선보인 게 몹시 아쉽다. 박 팀장은 “몰래 숨어 찍은 야생의 호랑이 장면은 성공적인 게 많아 비슷한 일을 하는 일본 아사히TV 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며 “봄에 방영할 본격 시리즈를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허 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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