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절필 4년만에 소설집 「흰소가 끄는 수레」펴내

입력 1997-09-30 08:51수정 2009-09-2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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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 박범신. 명징한 문체, 강렬한 감수성의 에너지, 폭발하듯 내닫는 질주의 고통과 열정…. 나이를 거스르면서까지 언제나 푸르른 청춘의 문학으로 남고자 했던 작가. 세상은 온갖 「삶의 물집」들로 가득차 있으며, 그 물집을 터뜨리는게 글쓰기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밤마다, 밤마다, 밤마다 써온 작가. 그런 그가 40대 중반의 어느날 덜컥, 「내 몸뚱아리가 늙어가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휘감겼을 때, 엄습한 것은 「이제 어디서 구원을 받아야 하나」 하는 정말 지독한 막막함이었다고 한다. 93년12월 「절필」 후, 처음 창작집을 내는 박씨. 이제 그도 나이 쉰을 넘겼다. 담담한 어조로 당시 문단의 사건이었던 절필의 정황을 전한다. 어느날 갑자기 펜이 멎어버렸다. 원고지 앞에 앉으면 마치 「천지창조의 마지막날 아침」처럼 휘황한 광채를 빛내며 형형색색 날아오르던 상상력의 나비떼들이, 미지(未知)의 흰 새떼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을 때의 그 적막감. 며칠 밤을 새우고도 원고지 한칸을 건너뛰지 못하고 신음할 때 잠옷바람으로 다가온 아내는 그의 머리를 와락 쓸어안으며 말했다. 「당신, 그러다 죽겠어. 소설 제발 그만 써요」. 그때 작가는 아내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말 그대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 한줄도 쓰지 못한 채 침묵으로 견뎌온 3년 세월. 이번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소설집(흰 소가 끄는 수레)은 작가로서 임종사(臨終辭)를 던진 「내」가 면도날을 품고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학의 불이 꺼진 「나」에게 삶의 선택은 단 하나, 죽음뿐. 이때서야 비로소 나는, 진실로 두려워했던 것은 문학의 임종(臨終)이 아니라 생(生) 그 자체의 사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산중에서 우연히 만난 바바리 코트의 사나이를 통해 절필과 자살이 사실은 「순간의 버림」을 통해 작가로서, 유한한 생명체로서 영원에 닿으려는 몸부림이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은 사멸을 말하면서도 불멸을 꿈꾸고 있소. 그러나 불멸이 있다면 그것은 흰 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있을 뿐…」. 탈진상태에서 집에 돌아온 나는 집에서 낯익은 바바리코트를 발견한다. 바바리코트의 사나이는 바로 자기 자신의 분신이었던 것. 불멸에의 집착도 달관(達觀)도, 사멸의 공포와 자유로움도, 종국은 제자리를 맴도는 한낱 미망(迷妄)이리…. 절필로부터 6개월후, 1년후, 2년후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연작소설들은 표제작 「흰 소…」에서 자신의 본원(本源)을 들여다본 작가가 점점 바깥으로 시선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비나비의 꿈」은 텃밭에서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개인)와 무리(전체)와의 불화를 털고 소통의 길을 트려는 희망을 외치고, 「바이칼 그 높고 깊은」은 연세대 한총련 시위에 가담한 딸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삶과 사회, 그리고 역사와의 관계를 반추하고 있다. 먼 길을 돌아와 이제, 「감히 자청하거니와, 저는 작가입니다」라고 말하는 박씨. 그동안 자신이 받아왔던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과분한 문학의 은혜를 입었어요. 절필하고도 3년은 너끈히 버틸 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번 소설도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지요』 이제 돈과 명예와 인기에 관한 한 「써도 그만, 안써도 그만」인 작가이고 싶다.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전기밥솥 코드를 꽂아야 할 시간이다. 저기, 그리운 이가 오고 있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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