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이기는 날은 『스트레스 해소의 날』

입력 1997-09-25 19:57수정 2009-09-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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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야구의 LA다저스 팀은 언제부터 우리 편인가. 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밉게 보일까.

온 나라가 온통 박찬호(24·LA다저스) 이야기뿐이다.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4승째를 올린 24일은 흡사 「박찬호 국경일」. 경기가 박찬호의 승리로 끝나자 어느 중국음식점 배달원은 빨간 매직펜으로 「축 박찬호 14승」이라고 쓴 철가방을 오토바이에 싣고 시내를 질주하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경기가 한창 진행중인 점심시간 무렵에는 택시를 잡아탄 승객들의 첫 마디는 행선지가 아닌 『박찬호 어떻게 됐어요』였다. 심지어 어느 재벌그룹에서는 회의를 마친 중역들이 점심을 먹기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며 박찬호경기 결과를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하자 벨보이가 재빨리 『지금 2대2 상황』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한국야구위원회 홍재형 총재는 『최근 스님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졌는데 스님들의 화제도 단연 박찬호가 으뜸이었다』고 말했다. 대기업부장인 박형진씨(45)는 『생전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내가 박찬호 경기를 본 이후에는 귀찮을 정도로 야구경기 규칙을 물어온다』며 싫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박찬호에게 열광하는가.

회사원 김호철씨(35)는 『요즘같이 짜증나는 때에 스트레스를 확 풀어 주는 것은 박찬호뿐이다. 좀 열광하면 어떤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말에 캐나다로 이민가기로 했다는 회사원 최영석(38)씨는 『야구경기는 야구경기로 보면 되지 박찬호가 무슨 민족의 영웅인가. 왜 이렇게 난리 법석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준만교수(전북대 신방과)는 최근 모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박찬호가 독립군인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한국인의 그 얄팍한 국수주의마저 상업적으로 이용할 만큼 위대하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정신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제는 「박찬호 신드롬」에 대한 시각은 제각기 달라도 막상 박찬호 경기가 있을 때면 모두 만사 제쳐 놓고 TV앞에 앉는다는 것.

강교수는 『박찬호경기를 때론 손에 땀을 쥐면서, 때론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만사 제쳐놓고 거의 다 시청한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라며 곤혹스러운 심정을 토로한 것이 그 좋은 예다.

도대체 박찬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왜 우리는 미치도록 열광할까. 정말 이것이 궁금하다.

〈김화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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