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싶다]지리산 피아골의 「가을 폭격」

입력 1997-09-25 07:26수정 2009-09-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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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복학하고 나서부터 해마다 한 두번은 몸과 마음의 살을 빼러 지리산에 갔던 그 버릇대로 다시 산으로 갔다.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한신계곡으로 올라가 능선을 타다 피아골 쪽으로 접어들었다. 버너가 고장나서 하산을 서둘러야 할 판이었다. 능선에서 내려와 1백여m를 갔을까, 풀이 우묵이 덮인 소로가 눈에 띄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그 길로 갔다. 그로부터 이틀동안 생쌀을 씹어가며 힘겨운 산행을 해야 했다. 길을 잃었던 것이다. 쌀과 신발 밑창이 떨어져 절망하여 주저앉았는데 문득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기다시피하여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니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났다. 더 나아가려면 오로지 절벽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나를 지켜 주었던 유일한 동반자인 배낭을 벗어 밑으로 던졌다. 배낭은 20여m 아래 삐쭉삐쭉 솟아오른 바위에 부딪치자 맥없이 많지도 않은 내용물을 토해냈다. 나는 첫발을 떼어 수백년간 조금씩 흘러내린 물이 만들어준 테라스같은 곳에 붙어섰다. 심호흡을 한 다음 발을 옮기는데 아차 할 틈도 없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사지를 거미처럼 쫙 펴고 배와 가슴, 뺨까지 최대한 절벽에 밀착시켰지만 점점 미끄러져 내려갈 뿐이었다. 그러다 가속도가 붙게되면 나는 먼저 보낸 배낭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었다. 원래 디디려했던 곳은 몸을 돌려 뛰어 닿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벼랑에 매달렸을 때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대장부로다』(백범일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나는 건너편 안전한 곳으로 건너 뛰어와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제 정신이 아닌 채 내려오던 길, 엄청난 포탄이 떨어진 듯 계곡의 아래 위, 물 속, 물 위, 공중을 가리지 않고 핏빛으로 물들던 그 단풍. 그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맛있게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맛있는 그만큼은 그때 그 피아골 단풍의 찬연함이 정해준 것이라 여긴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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