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IA창설 50돌]脫냉전시대 거듭나기 고심

입력 1997-09-17 20:15수정 2009-09-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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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창설 50주년을 맞아 CIA의 공과(功過)와 향후 진로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일고 있다. 1947년 이날 트루먼대통령은 진주만 피습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CIA 창설 법안에 서명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예상됐던 일이었으나 아무도 흩어져 있는 정보를 종합해 「진주만 피습 우려」라는 결론을 내주지 못했다. 뼈아픈 자성(自省)에다 크렘린에서 벌어지는 전세계의 공산화공작에 대비해 CIA라는 종합정보기관의 창설로 이어졌다. 초기 CIA의 활동은 세계각국의 정보분석이 주임무였다. 외국지도자 암살계획을 세우거나 쿠데타를 배후 조종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냉전이 격화되면서 CIA의 성격과 역할이 변질되기 시작했다.주적(主敵)인 구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정보분석만으로는 부족했다. CIA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CIA 없이 미국이 냉전에서 이길 수 있었겠느냐』는 긍정론이 있는가 하면 『무리한 비밀공작으로 미국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질타가 있다. 62년 U2 정찰기를 이용해 구소련이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것 등은 성과에 속했다. 그러나 73년 중동전쟁 발발, 74년 인도의 핵무기 보유, 79년 이란의 팔레비왕 축출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CIA가 대통령 직속기관이긴 해도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CIA를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닉슨대통령은 CIA가 월남전 반전데모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해서 『CIA를 어디에 쓰나, 4천명이 되는 요원들이 매일 신문만 베끼고 앉아있는데』라고 혀를 차곤 했다. 오늘의 CIA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냉전 종식과 함께 CIA의 존재와 기능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 『적은 사라졌는데 연간 예산 30억달러에 1만7천명의 초대형 정보기관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에 따라 CIA가 과거와 같은 비밀공작은 그만두고 정보분석, 특히 경제 산업 과학 정보의 수집 분석에 치중하는 소수 정예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들이 강조되고 있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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