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없는 「중년 실업자」들 『일하고 싶다』

입력 1997-09-11 20:09수정 2009-09-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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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41)는 오늘 아침에도 넥타이를 매고 출근준비를 했다. 그러나 서류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그가 향하는 곳은 회사가 아닌 관악산. 어제는 도봉산, 그저께는 북한산이었다. 증권사 차장으로 있다 지난 3월 명예퇴직한 그는 6개월째 「등산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칠순의 노모앞에선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하지 못했기 때문. 소일거리로 신문 서너가지를 사들고 올라가는 등산로에는 자신과 똑같은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비슷한 처지임이 쉽게 짐작이 간다. 관악산 도봉산 등이 「실업자 산」으로 불린다는 것. 실직 이후 여기 저기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K고 K대를 거치면서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던 그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경영자총협회에 개설된 중견인력의 재취업창구인 「고급인력정보센터」에는 K씨 같은 「중년 실업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번듯한 대기업의 부장 이상 경력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낸 구직표를 들여다보면 옛날의 자존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실직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업 희망조건」을 점차 낮추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증권사 부장 출신 Y씨(50)는 실직 10개월째. 그는 『직장에 다닐 때 격무 속에서도 술을 줄이고 담배도 끊었는데 어느새 담배가 입에 붙어있고 폭음을 해대는 내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지금 그는 『금융업이 아닌 제조업도 좋다』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소된 고급인력정보센터에는 지난 1년동안 40대 이상 중견인력이 3천17명 등록했다. 그러나 이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불과 2백58명. 10%도 채 안된다. 이 센터의 전대길(全大吉)소장은 『재취업이 안되니까 절에 가서 3천배를 올리는 등 눈물겨운 지극정성을 드리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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