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인디언 슬라이몬]시들은 문화 白人동화

  • 입력 1997년 9월 11일 07시 52분


신부감이 사는 마을이 가까워지면 뱃머리의 목청좋은 남자가 일어나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나머지 일행들도 일제히 화음을 맞추며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애의식을 행한다. 짐짓 모른 체하던 신부측 집안에서 문을 열고 청혼객들을 맞이한다. 밤이 되면 갈색피부의 인디언들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를 돌며 야생마같은 몸짓으로 허공을 박찬다. 『후쿼네토몰흐, 우리의 창조주, 우리의 수호자시여. 여기 당신의 두 자녀가 사랑을 맹세하나이다. 하늘같은 기쁨과 바람같은 자유를 얻고 클라민 호수의 연어처럼 살게 하소서』 캐나다 슬리아몬 인디언 거류지. 밴쿠버에서 북서쪽으로 1백여㎞ 거리에 위치한 인구 2만의 소도시 파월리버에서 다시 북쪽으로 10㎞ 남짓한 거리에 있는 곳이다. 클라민 클라후스 호말코 세 종족으로 구성된 주민수는 고작 8백여명. 30년전 5천여명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숫자다. 캐나다인디언은 60여 종족. 그 중 40여 종족이 서부해안지역에서 살고 있다. 저마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말을 타고 바람결에 검은 머리카락 나부끼며 초원을 내달리던 인디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사냥과 어업을 주로 하던 조상들과는 달리 오늘의 인디언들은 벌목일을 하거나 인근제지공장의 직공으로 생계를 꾸린다. 보트나 캠프장을 임대해 주는 일을 하며 사는 인디언들도 있다. 정부에서 상당한 액수의 생활보조금이 나오므로 일을 안하고서도 살 수는 있다. 문제는 버나와 같은 경우. 올해 42세인 그녀는 이미 세번 결혼한 경력이 있다. 30년전인 12세때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부모곁을 떠나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 시절을 그녀는 『마치 감옥 같았다』고 말한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의 문화박탈을 통해 그들을 아예 말살시키고자 했던 것. 그때 인디언 소녀들은 모어를 쓸 수 없었다. 어쩌다 인디언 말이 튀어나오면 심한 벌을 받았다. 가두고 때리는 것은 예사. 심지어 겁탈까지 했다. 현재 슬리아몬 인디언마을에서 자신들의 모어가 세일리시라는 것을 아는 젊은 인디언들은 거의 없다. 쓰는 것은 물론 말할 줄도 모른다. 집집마다 자동차는 한두대씩 갖고 있다. 살림살이도 그렇게 궁색하지 않다. 그러나 인디언사회의 특징인 축제나 춤 노래는 대부분 사라졌다. 3년전인가 「이름짓기 축제」라는 명명의식이 열렸다. 인디언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애착을 심어주려는 뜻있는 인사들의 노력의 결과다. 그래서 스무살 조디는 체스커넥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녀의 고모인 글리니스는 카뇨사마익이라는 인디언 이름을 별도로 갖게 되었다. 「숲의 어머니」라는 뜻. 하얀 마거리트꽃을 들고 엄마와 함께 조부모의 무덤을 찾은 다섯살 첼시는 유치원에 다닌다. 어른들이 첼시에게 첫번째로 가르친 것은 「낯선 사람과는 말하지 말라」다. 백인들에게 기만당하고 온갖 핍박을 받은 인디언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전형적인 인디언 여자답게 구리빛 피부에 굵고 작달막한 리타 아줌마. 그녀는 로렌스라는 마음씨 좋은 백인남자와 결혼했다. 왜 백인과 결혼했느냐고 묻자 『그냥 편해서』라고 대답했다. <연호택 관동대교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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