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서울 광장동 산성검도관 「여검회」

입력 1997-09-02 07:39수정 2009-09-2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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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허공을 가르는 죽도의 경쾌한 움직임.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속에서도 마음만은 더없이 평온하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여검회」. 서울 광장동의 산성검도관에 다니는 여중고생 회원 10여명으로 구성된 모임. 3단 승단을 눈앞에 둔 공인2단의 「고수」에서부터 입문 1년미만의 초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끼리끼리 재잘거리며 검도관을 찾는 이들은 누가 봐도 평범한 10대. 그러나 일단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몸가짐과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학교 성적이나 남자친구와의 갈등도 이 순간만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검도는 정신수양이 근본. 묵상에서 시작해서 묵상으로 끝을 맺는다. 남을 향해 내지르는 검이 아니라 내 속의 온갖 부정한 것을 베는 「마음의 검」을 닦아야 한다. 간단한 스트레칭과 기본동작으로 몸을 푼 뒤 드디어 상대방과의 일대일 대련. 70평 남짓한 수련장은 여검사들이 내지르는 기합과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다. 대련할 때 도복 위에 착용하는 보호장비인 호구의 무게는 10㎏안팎. 웬만한 성인남자도 힘겨워하는 중량에 죽도를 덤으로 들었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기품과 절도가 서려있다. 구슬땀을 쏟아내며 온몸의 기를 발산한 지 한시간. 죽도를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하루의 수련을 명상으로 정리한다. 짧은 시간 동안의 돌아봄으로 마음 한구석의 찌꺼기까지 깨끗이 털어낸다. 『TV드라마에 나오는 검도 장면이 너무 멋있어서 도장을 찾았어요. 처음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은 계속하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회장 문영숙·18·대원여고3년) 영숙이 말처럼 이들이 검도에 발을 디딘 이유는 단순하다. TV나 영화속 주인공의 검도하는 모습에 끌렸거나 친구나 가족의 권유로 도복을 입은 경우가 대부분. 막내 김소라양(13·중1)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검도관 문을 두드렸다. 지금은 부모님과 남동생 등 네식구가 모두 같은 도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검도가족이다. 전문선수를 목표로 입문하지는 않았지만 여검회 회원들의 검도실력은 결코 가볍지 않은 수준. 지난해와 올해 서울시에서 열린 대회에서 여중부와 여고부 단체전을 두번이나 석권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대회성적만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당당할 수 있는 내면의 자신감,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수양이 가장 큰 자산이다. 꾸준한 단련을 통해 얻은 날씬한 몸매 역시 검도가 가져다준 매력 중 하나. 검도에 입문한 이후로는 독서실에 들렀다 집으로 향하는 늦은 밤길에도 별반 두려운 게 없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여검회 회원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지상명제. 물론 그 강함이 단지 육체의 강인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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