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 유작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출간

입력 1997-03-18 07:59수정 2009-09-27 02:1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권기태기자] 지난 6일 자신의 작품집 출간을 눈앞에 두고 숨진 고 이태씨의 유작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가 살림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그는 「남부군」 이후 번역 기록문학에 매달리다 지난해초 74세의 나이로 「상상」봄호에 중편 「전쟁사의 언덕」을 발표했다. 그는 이를 시작으로 청년시절 이래 안으로만 삭여왔던 문학열정을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촛불이 비추고 있는 것은 어둡고 슬프다. 전쟁의 포화 속에 고독하게 사라져가야 했던 동시대인들의 비극적인 청춘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달픔이다. 「때때로 생각한다/언젠가 피로 물든 광야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고향을 그리워하며 학이 됐을 거라고」. 한일간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이 태평양전쟁의 포성 속에 찢겨 가는 내력을 담은 「전쟁사의 언덕」 마지막 구절이다. 「나」와 함께 젊은 시절 금강산을 거닐던 벗 쓰다에는 징집당해 레이테 해전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은밀한 연모를 나누었던 그의 아름다운 누이 사찌요는 공습으로 절뚝발이가 된다. 꽃같던 청춘의 소멸, 이루지 못한 사랑과 이상(理想)의 안타까움은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에서도 변주된다. 이 글은 영화 「남부군」에서 최민수가 인상적인 연기를 해보였던 시인 김영의 해맑은 심성과 문학에의 열정을 다루고 있다. 김영은 살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빨치산들과 함께 행동하면서도 『까닭없는 살상은 할 수 없다』고 버텨 미움을 받던 휴머니스트. 절제된 감정, 담백한 문장으로 일관한 이 작품집은 전쟁과 이념 속에 사라진 동시대인들을 위한 진혼곡이며 얼룩진 20세기를 향한 고별사다.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