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시네월드]「첨밀밀」,홍콩멜로드라마 진수보여줘

입력 1997-03-06 08:43수정 2009-09-2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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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꼼 뚫린 눈, 서다 만 코 그리고 자그마한 입을 가진 홍콩 여배우 장만옥은 결코 미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바로 그 부족함의 결합은 신비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마력을 만들어낸다. 대륙여자 공리를 아시아의 여신으로 섬기던 서구인들은 지금 장만옥의 포토제닉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장만옥의 매력과 연기력이 절절하게 흐르는 영화가 나타났다. 그녀가 3년만에 홍콩 스크린에 복귀한 「첨밀밀」은 1986년 상해를 출발한 홍콩행 대륙종단 열차에 동승한 이요(장만옥)와 소군(여명), 이 젊은 여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하고 두번 이별하고 운명적으로 재회하는 끈끈한 사랑의 이야기다. 너무 뻔한 남녀 상련지사지만 영화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스타일의 실험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고향을 떠나 자본주의 홍콩에서 만난 두 불안한 영혼의 사랑을 그린 전반부는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인물은 살아있고 형식은 파격적이다. 그러나 영화의 시간이 90년대로 점프해 이별했던 연인이 각자의 법적 동거인을 대동하고 나타난 이후 영화는 그 역사도 찬란한 신파 멜로 드라마로 변해 버린다. 그 신파적 정서는 심지어 바다를 건너 미국대륙에서 펼쳐지는 운명적 재회의 결론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참신한 1부나 필름 누와르가 가미된 2부, 그리고 보다 더 신파적인 멜로드라마로서의 3부 모두 장르의 법칙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영화 형식으로 보면 이것은 원색적 자본주의의 도시처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흡수해 버리는 스펀지를 닮아있다. 이러한 역설의 제조공법으로 「첨밀밀」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현실주의자 홍콩영화의 진수를 보여 준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주무르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구대륙과 신대륙같은 묵직한 주제를 자유롭게 오가지만 홍콩영화계의 유능한 아이디어맨 정도인 진가신 감독에게 그 모든 호재를 요리할 지성과 표현력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달콤한」이라는 뜻을 지닌 대만 여가수 등려군의 노래에서 따온 영화의 제목과 같이 「첨밀밀」은 홍콩 영화가 오랜만에 만든 멜로드라마의 수작 필름이다. 강한섭〈서울예전 영화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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