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수사/검찰 새고민]정태수씨「미운놈 찍기」

  • 입력 1997년 2월 9일 20시 13분


한보특혜대출비리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의 입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정총회장이 의도적으로 특정 인사만 골라서 진술하거나 사건의 핵심을 비켜나가는 쪽으로 진술을 왜곡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진술의 진위를 확인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정총회장은 과거 수서비리사건 때와는 달리 자신이 돈을 건네준 수십명의 인사들을 지목하는 등 어느 정도 입을 열고는 있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입을 다무는 등 이번 사건에서도 그의 입은 역시 가볍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정황은 이미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그는 우선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에게 건네준 돈의 액수를 5천만원이라고 진술했으나 권의원은 스스로 1억5천만∼1억6천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총회장이 돈의 액수를 줄여서 진술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 구속된 申光湜(신광식)제일은행장과 禹찬목(우찬목)조흥은행장의 4억원 커미션 수수사실은 정총회장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이미 조사를 받은 전현직 은행장만 무려 8명에 이르지만 나머지 은행장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거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정총회장이 특정 은행장만 찍어서 입을 열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총회장이 구속된 은행장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완벽한 진술을 했다』며 『아마도 이들에 대해서는 대출을 중단해 부도가 나게 한데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속된 말로 「미운 놈만 찍는 식」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관계(官界)인사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수사결과 관계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가장 지지부진하다』며 『정총회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분명히 관계쪽에서 정총회장의 뒤를 봐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지만 정총회장의 태도는 냉담하다는 것. 崔炳國(최병국)대검중수부장은 『정씨가 먼저 줄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우선 우리가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한 내용에 대해 마지못해 진술하고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증거가 확실하거나 다른 관련자의 진술로 자신이 빠져나가기가 어려울 때만 입을 연다는 것이다. 정총회장 입장에서는 구속 이후 전혀 입을 열지 않을 수 없고 어느 정도는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따라서 검찰은 정총회장이 돈을 줄 때 주로 동행했던 운전사 임모씨 등 주변인물들을 통해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는 외곽수사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정총회장의 「세치 혀」가 이번 사건을 푸는 열쇠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하면 거기에 놀아나는 꼴이 되기때문이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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