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곡마단원과 가방수선공

  • 입력 1997년 1월 17일 20시 19분


여주법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도로변의 겨울들판 위로 서커스단의 울긋불긋한 천막이 보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나를 그 안으로 끌어들였다. 천막안은 7,8명의 관객만 있을 뿐 썰렁했다. 그런데도 단원들은 열심히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이윽고 고구려 무사옷을 입은 청년이 줄타기 재주를 부리기 위해 허공에 걸린 밧줄 위로 올라섰다. 『여러분 날은 춥지만 묘기만큼은 최선을 다해 보여드리겠습니다. 민속놀이로 우리에게 전해진 이 줄타기 재주는 저를 비롯한 몇사람만이 지금 전수받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박수좀 쳐 주세요…』 그 청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신들린 듯 허공 위로 튀어올랐다가 밧줄 위로 사뿐히 내려앉곤 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저녁을 녹이는 자부심과 정열이 그 청년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않는 매화처럼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무거운 재판서류를 위해 특별히 구한 외제 가죽가방의 손잡이가 끊어져 나갔다. 외국에 있는 공장으로 보낼 수도 없어 망설이다가 결국 동네 길 구석에 알루미늄새시로 만든 조그만 부스 속에서 가방과 구두를 고치는 장애인 아저씨에게 수리를 부탁했다. 가죽 손잡이의 색깔이 녹색이고 또 바느질이 정교해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자기가 가방고치는 데는 세계최고니까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 가방은 처음상태같이 완벽하게 수리되어 돌아왔다. 가죽 위로 보이는 바느질 자국 한땀한땀에는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가방을 전해주는 그의 표정은 수리비보다 최고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긍지로 가득했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면서도 마음은 부자인 그 두 사람의 의연한 모습을 보면서 삶의 가치척도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엄 상 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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