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 前서강대총장 인터뷰]『소신발언은 실상 전한것』

  • 입력 1997년 1월 17일 20시 19분


<<朴弘(박홍·55) 전 서강대총장은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 지난 9일 이임식과 함께 「총장」에서 「신부」로 돌아온 그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내 평생의 일』이라며 한번 말문을 열면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때로는 거친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할 말은 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들렸다. 그는 노동계의 총파업사태와 관련, 노사정(勞使政) 모두 「힘의 원리」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좌경 운동권 학생들이 새학기에도 계속 계급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대담=송대근 사회1부차장」지난 14일 오전 서강대 사제관으로 박전총장을 찾았을 때 그는 『이제 막 건강진단을 받고 왔는데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며 담배부터 피워 물었다. 그리곤 『나도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찾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 나름의 생각을 얘기하겠다』고 운을 뗐다. ▼주사파 여전히 위협적▼ ―총장으로 재임하시는 동안 깜짝 놀랄 얘기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평교수로 돌아온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제가 총장으로 있던 지난 8년간은 민주화의 격동기였습니다. 그런데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비민주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반생명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진통기에 대학 총장을 두번씩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고 나름대로 그 실상을 전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주사파 논쟁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지난 94년 여름 「대학가에 주사파가 깊숙이 침투했고 金正日(김정일)이 이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주사파가 우리 사회, 우리 대학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죠. 3년전부터 일부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과 이념을 바탕으로 계급 폭력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학총장을 3개월만 해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교수도 일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가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먼저 민족주의입니다. 남북이 하나라는 주장이지만 사실은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민주화 다양화인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남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화공산주의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문화공산주의란 구체적으로…. 『노골적으로 공산주의를 주장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니까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공산주의를 적당히 「포장」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통해 선전선동을 하고 아름다운 글로 미화를 하고…. 그런 문학작품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학생들이라고, 방법이 틀렸다고 그들만 탓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 우리 대학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인성교육 사상교육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국민총생산(GNP)의 5%를 교육에 투자키로 한 것은 매우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통일대비 인성교육 예산은 1%도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백40학점을 따도록 돼있지만 인간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교육, 공산주의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교과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총장 취임당시에는 「학생들의 급진성만 탓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원인을 먼저 치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운동권 학생들을 호되게 비판하고 계신데…. 『그때 주장과 지금 주장이 상충되는게 아닙니다. 대학운동권이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얘깁니다. 80년대초에는 순수한 학생운동 세력과 일부 용공세력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용공세력이 완전히 운동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오류는 미워하되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대학이 교육을 통해 모두 끌어안아야죠』 ―정부 여당의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노동계의 파업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명동성당에 언제 공권력이 투입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무슨 해법이 없겠습니까. 『각계 지도자들이 서둘러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지도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여야는 당리당략을 초월해야 합니다. 우선 노사정(勞使政) 모든 당사자가 2주일 정도 「휴전」에 들어가면 어떨까요. 노조는 2주일 시한부로 파업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정부는 그안에 정부 나름의 「대안」을 마련해 노조측과 대화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기간에는 공권력 행사도 자제돼야 합니다. 이같은 「휴전협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각계 원로가 적극 나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렇게 일이 꼬였다고 보십니까. 『노동없이 자본없고 자본없이 노동없습니다. 불가분의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얘기죠. 그런데 그동안 기업은 이윤추구에 급급한 나머지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고 근로자들은 자본(고용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노동과 자본의 화해단계를 거치지 않은 겁니다. 최근의 사태가 「썩음(부패)」으로 갈 수도 있고 「삭음(발효)」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썩음과 삭음은 비슷한 현상이지만 질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썩는 방향으로 나가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러나 삭음으로 이끌면 갈등을 딛고 그야말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각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학 「공동체 삶」교육을▼ 박전총장은 인터뷰 요청을 받고 파업사태에 질문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한듯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노트까지 준비, 「용서와 화해론」을 펼쳤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좀처럼 파업얘기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담뱃불을 붙이는 틈을 타 어렵게 화제를 돌렸다(박전총장은 「담배는 정신적 비타민」이라며 인터뷰내내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얼마전 서울대 교수 한 분이 온통 사법고시 준비장으로 변한 오늘의 대학현실을 개탄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역할에 대해…. 『대학의 역할은 크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그 시대의 인간문제와 사회문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답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이죠. 다양화 세계화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는 지식만 갖고는 안됩니다. 전문지식은 컴퓨터에 다 있습니다. 남과 함께, 남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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