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씨 10주기 추도식…당시 고문경관들 行不

입력 1997-01-14 20:22수정 2009-09-2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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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은 87년 6.10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 朴鍾哲(박종철)씨의 10주기. 이날 오후 2시 박씨의 모교인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 주최로 추도행사가 열렸으며 오후 6시에는 「6월민주항쟁 10주년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상임대표 金重培·김중배)가 주최하고 박종철열사 기념사업회(회장 金勝勳·김승훈신부)와 서울대 총학생회가 주관한 추도행사가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박씨의 가족을 비롯, 당시 박씨가 활동하던 동아리 「대학문화연구회」와 서울대 언어학과 동료 선후배들이 대거 참석, 현 시국에 관해 감회를 피력했다. 이들은 대부분 박씨 추모관련 사업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 朴正基(박정기·68)씨는 부인 鄭且順(정차순·66)씨와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현재 큰아들 종부씨(39·H전자근무·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집에서 살고 있으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상임대표직을 맡고 있다. 박씨가 목숨을 걸고 끝까지 행방을 숨겨준 선배 朴鍾雲(박종운·37)씨는 현재 서울 金忠環(김충환)강동구청장의 비서실장(별정직 5급)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 사건으로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수배중인 선배가 박씨의 자취방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경찰의 모진 고문끝에 발설했던 한 동아리친구는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은 끝에 「박종철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당시 박씨의 언어학과 동기로 같은 집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한 친구는 박씨 사망이후 「밀고자」로 잘못 소문이 나 결국 일본에 건너가 3,4년간 생활하다 95년말 귀국했으나 아직도 동료들과 연락을 끊고 있다. 한편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 등 고문관련 경관들은 지난 93년 4월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난 뒤 서너차례 이사를 다녀 현재 소재파악이 안되고 있다고 기념사업회측은 밝혔다. 〈洪性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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