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 형편 때문에 선수 꿈을 접었다. 시골이다 보니 사실상 축구는 사치였다.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여유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다시 축구로 눈을 돌리게 됐다. 장창엽 석영운수 대표(60)는 2000년 1월부터 주말 조기축구 동호회에서 공을 차기 시작해 27년째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장창엽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서울시 동대문구축구협회 회장 취임식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장창엽 대표 제공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등으로 당시 축구 인기가 치솟고 있을 때였다. 생활 축구도 그 붐을 타고 있었다. 장 대표는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활동하는 ‘푸른회축구회’에 가입했다. 푸른회축구회는 1976년 9월 창단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조기축구의 전통 명문이다. 그는 “마음도 푸르게, 축구도 푸르게, 축구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고 설명했다. 현재 1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매 주말 상대팀을 정해 홈이나 어웨이 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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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엽 대표(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푸른회축구회 회원으로 대회에 출전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장창엽 대표 제공
이른바 ‘선출(선수 출신)’로 동대문구에서 잘 나갔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선수 출신 특유의 감각과 순발력이 몸에 배어 있어 녹색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선수 시절에는 오른쪽 윙포워드였고, 성인이 돼 공을 찰 땐 최전방 공격수를 했다. 지금은 수비도 보고, 골키퍼로 활약할 때도 있다. 생활 체육 축구 전국대회에서 골키퍼 상을 받을 만큼 실력도 수준급이다. 30대, 40대, 50대를 거치며 동대문구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도 차지했다.
장창엽 대표(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푸른회축구회 소속으로 서울 동대문구축구협회 대회에서 우승한 뒤 회원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장창엽 대표 제공
한창 활발하게 뛰던 시절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 저녁에도 공을 찼다. 요즘은 토요일 오후 3시부터 6시는 동대문구 대표팀에서, 일요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는 푸른회축구회에서 공 차고 있다. 장 대표는 지금도 주말 경기에서 25분씩 4쿼터를 뛸 정도로 탄탄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장창엽 대표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천공원 축구장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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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엽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푸른회축구회에서 회원들과 회식하고 있는 모습. 장창엽 대표 제공
인터벌트레이닝은 엘리트 운동선수의 지구력 강화를 위해 활용되는 훈련이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경우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90%로 달리고 조깅해 돌아와 다시 달리는 횟수를 20회 정도 한다. 엄청난 강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 미니게임으로 인터벌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5대5, 7대7 등 미니 게임을 하며 5~7분 쉬지 않고 플레이를 하게 한 뒤 휴식을 주는 방식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불안전 휴식이 아니었지만 이는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업그레이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장창엽 대표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천공원 축구장에서 엄지척을 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장 대표는 “친구 5분의 4가 축구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우승 등 순위가 아닌 회원들의 화합이다.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고, 작은 데까지 파고들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조사 참여는 물론 개인 상담까지 이어진다. 축구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이웃을 잇는 다리가 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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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엽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서울시 동대문구축구협회 회장 취임식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장창엽 대표 제공
장 대표는 말한다.
“사업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몸이 바로 반응합니다. 찌뿌드드하고 컨디션이 엉망이 되죠. 그래서 주말엔 축구장으로 갑니다. 몸 풀고 공차며 땀을 쫙 빼주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해집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