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배임죄 폐지안] ‘재산관리범죄 처벌법’ 초안 처벌 기준 모호했던 용어들 구체화… ‘임무 위배’ 법령-규약 위반만 적용 사익추구 없을땐 면책 특례 조항 등… 기업들의 요구사항 대부분 반영돼 지방선거후 與TF주도 입법 나설듯
특례법 초안에는 형법상 배임죄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용어를 명확하게 하면서 처벌 대상을 구체화했다. 수사기관과 재판부에 따라 임의로 바뀔 수 있는 처벌 대상을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한 것이다.
● 처벌 대상 구체화하고 면책 조항 신설
광고 로드중
‘임무 위배’는 “법령, 규약, 내부 규정에 반할 때”만으로 한정했다. 기존에는 명시적인 법과 규정 등을 지켰어도 회사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충실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엔 불법으로 판단했다. 예를 들어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데도 결과적으로 투자에 실패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배임죄로 처벌을 받을 위험이 있었던 것.
또 특례법은 법 적용 대상을 기존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대신 ‘법률, 규정에 따라 임무를 부여받은 재산관리자’로 한정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벌총수가 등기 이사가 아닌 경우 직접 수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례법 3∼9조에는 재산관리범죄의 유형을 7개로 한정했다. 법무부는 3000여 개의 판례를 분석해 이 중 처벌이 꼭 필요한 유형 7개를 추려 해당 내용만 처벌하는 방식으로 특례법에 처벌 유형을 구체화했다. 처벌 유형에는 재산 유용, 자산 유출, 부동산 이중매매, 곗돈 미지급 등이 포함됐다. 이들 7개 유형을 제외하면 수사기관이 임의로 기소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또 특례법은 고의로 범죄를 저지를 목적을 밝힐 수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엔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인식할 정황이 있으면 처벌 대상이 됐지만 앞으론 범죄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만 기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광고 로드중
● 지지부진했던 배임죄 폐지 지방선거 직후 본격화
경제계와 전문가들은 배임죄의 요건이 구체화되고 대상과 혐의 적용 방식이 구체화되면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경제계에선 배임죄가 혁신을 위한 투자를 막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처벌이 난무해 리스크 요인이 컸다며 폐지를 요구해 왔다.
과거 총수가 계열사 지원을 결정했다가 배임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 10대 그룹사의 임원은 “배임 적용을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이 그룹 전체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경영 판단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에서 배임 관련 연구를 해 온 한 팀장급 관계자는 “형법상 배임죄에 대한 정의는 딱 한 줄만 들어가 있어 재판 과정의 ‘판단’이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며 “이 같은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임죄 폐지 논의는 지난해 7월 1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7월 30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배임죄가 남용되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 제도적 개선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배임죄 제도 개선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당정은 지난해 9월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를 출범시키면서 배임죄 폐지 방침을 구체화했다.
광고 로드중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법무부를 통해 마련된 초안을 TF를 중심으로 검토한 뒤 의원 입법을 통해 발의한다는 방침이다. 특례법의 소급 적용 여부도 이 대통령의 재판 등 쟁점이 있는 만큼 지방선거 이후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민기 기자 koo@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