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묻혔던 침몰의 진실
2013년 10월 5일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인근 해상에서 열린 곤론마루 침몰 희생자를 위한 추모 행사에 참여한 유족들이 선박 갑판에서 바다를 향해 헌화하고 있다. 시모노세키 공습의 전모(下関空襲の全貌) 서적 캡처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연락선 ‘곤론마루(崑崙丸)’ 침몰과 관련한 국내 연구는 사실상 전무하다. 12일 일제강점기 희생자와 관련한 연구 조사를 추진하는 공익법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는 “곤론마루와 같은 연락선 침몰 자료를 찾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고 해당 사안을 연구한 연구원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도 관련 연구 논문이 검색되지 않았다. 한글로 된 서적은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81·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7월 펴낸 52쪽 분량의 소책자 ‘곤론마루 격침 사건’이 유일했다. 김승 한국해양대 교수(국제해양문제연구소)는 “일제 말기에는 강력한 언론 통제로 신문사조차 강제 폐간돼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곤론마루 침몰은 독립운동도 아닌 군 관련 사건이기에 일제가 정보를 더욱 극비로 관리해 사료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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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론마루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한 기관사 마쓰바야시 마사오 씨 모습. 관문해협도선사(関門海峡渡船史) 서적 캡처
곤론마루 침몰 당시 기관사 마쓰바야시 마사오가 표류하며 겪은 상황이 기록돼 있다. 관문해협도선사(関門海峡渡船史) 서적 캡처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생존 사실이 통보되지 않아 집에서 이미 장례 준비가 진행 중이었던 것. 이후 한 달 넘게 통원 치료를 받았고, 생존자들에게 위로금 50엔이 지급됐다. 당시 관부연락선 여객 운임은 일등석이 20엔, 이등석이 10엔이었다고 한다. 곤론마루 침몰 후 관부연락선에서 구명조끼 상시 착용이 의무화됐다고 그가 설명했다.
책에는 바닷속 소리를 탐지해 적 잠수함을 찾는 음탐병의 회상도 담겨 있다. 10월 4일 밤 시모노세키 인근에서 당직 근무 중이었던 야지마 가쓰미는 “어뢰로 추정되는 음향을 감지해 즉시 보고했으나 당직 하사관이 졸고 있었고,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계산한 결과 음향 발생 지점이 70㎞ 떨어진 오키노시마 인근 해역으로 추정했는데 그 정도로 먼 곳에서 어뢰 음향이 도달할 리 없을 것으로 여겼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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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