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가동되고 있는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오른쪽 사진은 최희윤 KISTI 원장이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콘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에서 누리온의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 KISTI 제공
최 교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탄소 원자 1만1164개로 구성된 그래핀 두 장의 모형을 만들고, 탄소 원자 속 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일일이 계산하고 있다. 33 경(1만 조) 회에 이르는 막대한 계산량이다. 최 교수는 “계산량이 너무 커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난해 도입된 한국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덕분에 대규모 계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누리온의 연산 속도는 25.7PF(페타플롭스)다. 1PF는 1초에 1000조 번 연산할 수 있는 속도다. 사람 70억 명이 420년 동안 계산해야 하는 양을 1시간 만에 할 수 있다. 슈퍼컴 4호기 보다 80배 빨라진 누리온은 올해 6월 ‘슈퍼컴퓨팅 콘퍼런스’가 발표한 세계 슈퍼컴 순위 ‘톱500’에서 15위를 차지했다. 최 교수는 “누리온 도입으로 외국의 PF 기반 소프트웨어를 들여올 수 있게 돼 실제 계산 속도는 수백 배 빨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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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슈퍼컴 4호기 이후 9년 만에 누리온이 도입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과학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다음 슈퍼컴 준비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과학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 빠른 슈퍼컴을 도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첫 공개 당시 세계 11위를 차지한 누리온도 불과 1년 만에 4계단이 떨어졌다. 슈퍼컴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은 2∼3년 내로 1000PF급 슈퍼컴을 개발해 도입하는 계획을 내놨다. 누리온의 6배 성능을 가진 세계 최고 슈퍼컴인 미국의 ‘서미트’(148PF)보다 7∼8배 빠른 속도다. 최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슈퍼컴 경쟁력 유지 문제를 단순히 과학기술계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희윤 KISTI 원장은 “슈퍼컴퓨터는 과학의 지속적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수”라며 “융합연구와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 지원에 5호기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