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그제 ‘한국판 양적완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놓았다. 금리를 낮춰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며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인수해서 산업은행에 기업 구조조정용 실탄을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인 뒤 대출상환 기간을 장기로 바꾸도록 하는 방침도 내놨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미국과 일본이 돈을 찍어 경기 부양에 나선 것과 비슷한 고육지책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의 공약은 존중하지만 통화정책에는 할 말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새누리당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부담 경감을 위해 마련한 공약이라지만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발권력을 선거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부터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식’으로,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하나로 양적완화를 도입한 것과 ‘한국판 양적완화’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강 위원장은 무차별적인 자금 공급이 아니라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 자금 규모를 늘리되 용도를 정해 두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가 살아난 반면 일본 경제가 돈을 뿌려댄 만큼 살아나지 못한 것은 기업 구조조정과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융 시스템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될 만한 기업으로 돈이 흘러갔지만 일본에선 좀비기업으로 흘러가 구조조정만 지연시키고 있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한없이 미루고 있는 한국의 경우 미국보다는 일본과 비슷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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