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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블라디미르 vs 21세기 블라디미르

입력 | 2016-01-27 03:00:00

푸틴, 실책 무마위해 레닌 맹비난




블라디미르가 블라디미르를 씹었다.

말장난이 아니다. 전자는 ‘21세기 차르’라고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다. 후자는 20세기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를 처형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다.

푸틴 대통령은 25일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와 그의 가족, 측근을 처형하고 수천 명의 성직자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국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며 레닌을 맹비난했다.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친정부 활동가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 혁명으로 대(大)러시아의 꿈이 좌절됐으며 공산주의 실험 실패 이후 옛 소련이 분열된 것도 연방주의를 도입한 레닌 탓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2014년 이후 9000여 명이 숨진 우크라이나 사태도 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거점인 돈바스 지역을 우크라이나 영토로 편입시킨 레닌의 오판 때문이었다고 했다.

외신은 이 소식을 급하게 타전했다. 러시아에선 레닌과 혁명에 대한 자부심과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어 스탈린은 몰라도 레닌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21세기 들어 16년째 철권통치를 휘둘러 온 푸틴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금기를 깬 것이다.

‘21세기 블라디미르’는 이제 ‘20세기 블라디미르’까지 얕잡아볼 정도로 기고만장해진 것일까. 심지어 연방론을 주장한 레닌이 틀렸고, 단일국가론을 들고나온 스탈린이 옳았다는 발언까지 했다. 다만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붉은 광장 대리석 묘에 안치된 레닌의 시신을 옮기는 것에 대해선 “러시아 사회를 분열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초래한 자신의 실책을 과거 탓으로 돌리기 위해 역사의 유령까지 불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역사 문제 개입에 신중했던 푸틴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게 ‘역사 다시 쓰기’에 나서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같은 날 그런 푸틴에 대한 비판이 미국 재무부 차관의 입에서 나왔다. 미국 정부의 경제 제재를 전담하는 애덤 수빈 차관은 BBC가 방영한 ‘푸틴의 비밀 재산’에서 푸틴의 부패상을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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