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최근 남자프로골프대회가 열렸던 국내 한 골프장의 기자실. 한 여성이 대회 관련 기사를 붙여놓은 게시판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렸다. 그 골프장 캐디(경기 보조원)였다. “내 얼굴 나온 사진 함부로 쓰면 어떻게 해요. 남편은 내가 캐디 일 하는 줄 모른단 말이에요.” 한동안 짜증을 내던 그는 자신의 사진이 게재된 신문 스크랩을 뜯어버렸다.
#캐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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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캐디①의 신상 노출 우려에 골프장과 대회명은 밝히지 않았다. 반면 캐디②에 관해서는 별 걱정 없이 실명까지 적었다.
이것이 한국 골프의 ‘슬픈 현주소’다. 우리나라처럼 골프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비유의 순서는 바뀌었지만 캐디는 내 아내에겐 부적절한 직업, 경제적 여유가 없는 프로골퍼에게는 안성맞춤 아르바이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골프 치는 사람’을 보는 시선도 극과 극이다. 외환위기의 시름을 약간은 덜어준 박세리의 맨발 샷 투혼에 감동하고 최경주와 양용은의 우승 세리머니에 환호했다. 정부는 그들에게 훈장도 수여했다. 하지만 일반 골퍼는 엄청난 세금을 바치는 ‘봉’일 뿐이다. 골퍼가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할 때 내는 개별소비세는 카지노의 4배, 경마장의 23배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2월 “승마나 요트에도 없는 개별소비세가 골프에만 적용되는 것은 명백한 차별과세”라며 위헌소송을 내기도 했다.
골프장을 보는 눈도 ‘어른들의 최고 놀이터’와 ‘부자들만의 자유 공간’으로 엇갈린다. 한 대선 캠프에서는 ‘골프 자제령’까지 내릴 정도로 골프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골프장 인허가 관련 각종 비리와 고가(高價) 외제 골프클럽 밀수, 연간 3조 원 이상을 쓰는 해외 골프관광….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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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9년부터 2년간 지방 회원제 골프장에 대해선 개별소비세 감면이 시행됐다. 하지만 대중골프장 예상 내장객이 지방 회원제 골프장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로 대중골프장 이용객만 30%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마지막으로 ‘불편한 진실’ 한 가지.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 입장객은 680만 명이었고 골프장 내장객은 2840만 명이었다. 숫자만 비교해도 4배 이상인 데다 관람객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현실에 맞게 골프를 보는 눈도 달라질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