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 박사 평전 첫 출간■ 황실 재산 환수 노력獨은행 예치금 일제가 불법인출관련서류 모아 1919년 美의회 제출1948년엔 한국정부에 보고서■ 눈물겨운 한국 사랑대한제국 말기 한글교과서 제작황실 외교고문으로 독립운동아리랑에 서양식 음계 붙이기도
《“내탕금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소. 내가 고종 황제의 수임권자로서 돈을 받게 되면 즉시 그 돈을 한국에 돌려줄 것이니 알아서 처분하시오.”(1948년 12월 22일, 호머 헐버트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일부)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의 기일(8월 5일)을 앞두고 그의 일생을 되짚어보는 책이 나왔다. 헐버트에 대한 첫 평전이다.》
이 평전은 특히 고종이 해외 은행에 맡겼다가 일본에 빼앗긴 거액의 내탕금(황실 재산)과 이를 되찾기 위한 헐버트의 노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고종의 내탕금 관련 연구는 많았으나 내탕금이 사라지고 광복 이후까지 이를 찾으려 한 헐버트의 노력을 조명한 사례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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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2008년 6월 27일자 A2면 참조
사라진 ‘황제의 비자금’ 50만 마르크
①1880년대 후반 서울의 관립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헐버트 . ②1942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고 있는 헐버트. 왼쪽이 헐버트, 오른쪽이 이승만이다. ③1949년 7월 29일 한국을 방문하려고 인천항에 도착한 헐버트(가운데).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저자는 그 이후 헐버트의 행적을 상세하게 추적했다. 헐버트는 변호사를 고용해 통감부 초대 외무총장 나베시마가 쓴 인출금 수령 영수증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들을 모아 진술서를 만들어 1919년 8월 18일 미국 의회에 제출하는 등 사라진 내탕금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1948년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내탕금을 찾아달라는 고종의 어명을 받고 경위를 추적한 보고서와 관련 서류 일체를 보냈다.
헐버트는 191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된 뒤 미국에서 지내다가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배를 타고 내한했다. 그는 당시 감회를 묻는 AP통신 기자에게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둔 헐버트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역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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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탕금을 찾으려는 노력 외에도 이 책은 대한제국 말기에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리랑에 최초로 서양식 음계를 붙이는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헐버트의 활동도 폭넓게 조명했다. 저자는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던 헐버트를 기억하는 것은 한국인의 도리이자 의무”라며 “한 나라의 황제가 호소 한 번 못해보고 백주에 돈을 빼앗겼는데, 이 돈을 되찾는 데 정부와 국민이 의지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