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빨리 진상 밝혀라” 오바마, 이 총리에 촉구가자지구 해결없이 협상‘오바마안 한계’ 지적도
이스라엘의 국제구호선에 대한 무력공격 감행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소원했던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구호선의 승선자 10여 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고 발생 직후 캐나다를 방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가진 통화에서 희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모든 진상을 가급적 빨리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했다. 또 1일 백악관을 방문하기로 했던 네타냐후 총리가 캐나다 방문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된 것에 대해 이해를 표시하면서 “조속한 시일 안에 일정을 다시 잡겠다”고 말했다.
비교적 차분한 공식반응에 비해 미국 내에서는 고립을 자초하는 이스라엘의 독불장군식 행동에 대한 불만이 들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동평화협상의 재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은 분노의 감정까지 표출하고 있다는 것.
광고 로드중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에서 폐막된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는 이스라엘에 대해 NPT에 가입하고 핵시설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포괄적 규제 아래 두도록 촉구했으나 핵무기 개발 의심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NPT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은 아예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동평화협상의 본질인 가자지구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 협상을 시작하려고 한 ‘오바마식 협상’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자지구는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양대 자치지역 중 하나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지속적인 분쟁의 중심이 되어 온 곳. 2007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반대하는 강경 무장세력인 하마스가 이 지역을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봉쇄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유럽은 가자지구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야 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 중동평화협상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틴 인다이크 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도 “이번 사태는 가자지구 봉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국제적 평판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광고 로드중
▼이, 가자지구 로켓포 공격… 3명 사망
“구호선 입항 계속 금지” 강경… 안보리 강력성토 무색▼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구호선을 공격해 최소 9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자 국제사회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국제조사단의 철저한 조사 요구 등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터키 레바논 등의 요구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안보리는 12시간의 논의 끝에 의장성명을 내고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민간인 최소 10명을 숨지게 하고 다수의 부상자를 낸 행위”라고 강력 규탄했다. 또 이스라엘군이 강제 체포한 국제 활동가 전원을 즉각 석방하고 공정한 진상조사를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가자지구의 봉쇄를 풀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1일 의회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를 ‘피의 대학살’로 규정하면서 “누구도 터키의 인내를 시험해선 안 된다”고 강경한 어조로 비난했다. 그는 남미를 순방하던 중 국제구호선 희생자 대부분이 자국민으로 알려지자 즉각 귀국했다. 터키 의회도 전날 이스라엘의 공격을 국제법 위반 행위로 규정해 ‘가장 강한 용어’로 비난하고 반 총장에게 국제조사단 파견을 촉구하는 의장성명 초안을 제시했다.
프랑스도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조사가 실시돼야 하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를 해제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유럽 각국과 미국 측은 깊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우선 이스라엘 측의 해명 쪽에 무게를 뒀다. 미겔 앙헬 모라티노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며 이스라엘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주장했다.
세계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스라엘은 일부 활동가들이 권총을 쏘고, 칼과 쇠막대 등으로 저항했기 때문에 발포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면서 이스라엘 병사가 쇠막대기 공격을 받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억류됐다 1차적으로 풀려난 몇몇 구호단체 단원들은 “이스라엘 특공대가 고무탄과 전기충격기로 공격할 동안 단원들은 인간방패로 저항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광고 로드중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