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한 12일 북한 내륙 지역에서 임가공사업을 하는 한 기업인이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이 같은 ‘제보’를 했다. 이에 한 당국자는 “정부의 대응 조치가 아니다. 다만 남북관계 상황이 불확실하니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조치다”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통일부가 지난 주말 산림청과 보건복지부 등 10개 정부 부처에 비밀리에 공문을 보내 이미 예산이 확정된 대북 지원사업을 보류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17일 밝혀졌다. 이는 정부가 20일 예정된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북한의 소행’임을 기정사실화하며 ‘사실상의 대응 조치’ 실행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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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조치와 해명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 남측 자산 몰수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공언했다가 발표 시점을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결과 발표 이후로 미뤘다. 북한에 ‘잘못하면 응징 받는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 대북 제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정쩡한 ‘예령’ 때문에 중요한 카드들이 사전에 공개돼 대북 제재의 효과가 크게 반감됐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꼭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면 비밀리에 실행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서 공개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고 합의를 얻는 모양을 취했어야 했다. 비밀이 없는 요즘, 공문에 ‘비밀’이라는 도장만 찍으면 보안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었다면 더더욱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정체불명의 ‘핵 장난’으로 수소폭탄도 만들 수 있다고 선전선동을 하는 나라와 대적하고 있다. 이런 북한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실행으로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전략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