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이후 美금융주식 ‘반토막’
투자펀드 활기… 인력-부동산도 공략
미래에셋은 16일 부동산펀드인 ‘미래에셋맵스AP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대형 빌딩을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상 43층짜리 빌딩으로 매입 금액은 약 3750억 원.
한국투신운용이 3, 4월 두 달간 모집한 사모펀드 ‘한국사모월스트리트투자주식’에는 700억 원의 자금이 몰렸다. 한국 자본의 미국 시장 공략이 가속화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위기와 주택가격 하락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에서 ‘자산 사냥’에 나선 것이다.
서울 도심의 알짜 부동산과 제조업체, 금융회사를 선진국, 특히 미국 사모(私募)펀드 등에 맥없이 내줘야 했던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이제는 뒤집어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 한국 자본들, 미국에 전방위 투자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1월 미국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어 하나은행도 2월 말 싱가포르 테마섹이 보유한 메릴린치 지분 일부를 5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또 부실채권 정리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수억 달러 규모의 미국 부실채권 인수를 추진 중이다.
주가가 떨어진 미국 금융회사 지분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삼성투신운용은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등에 투자하는 ‘삼성글로벌파이낸셜서비스 펀드’를 3월에 내놨고, 앞서 하나UBS자산운용은 ‘하나UBS글로벌금융주의 귀환’을 선보였다. 펀드 평가 회사 제로인에 따르면 이달 30일 기준으로 미국 금융회사 투자 펀드의 설정액은 1678억 원에 이른다.
월가(街) 핵심 인력에 대한 ‘인재 사냥’도 시작됐다. 삼성증권은 19년간 메릴린치에서 리스크 관리를 맡았던 권경혁 전무를 리스크관리 총책임자로 3월에 스카우트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현재 홍콩에서 월가 출신 리서치인력 영입 작업을 벌이고 있다.
○ 값싸진 미국 자산, 외국인 투자 불러
국내 자본의 미국 시장 공략이 활발해진 가장 큰 이유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식, 부동산 등 미국의 자산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최창훈 부동산1본부장은 “이번에 샌프란시스코의 빌딩을 사들이는 결정에 지난해 최고가격보다 10∼15% 떨어졌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미국 주요 금융회사들의 주가도 1년 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29일 종가 기준으로 메릴린치의 주가는 1년 전보다 52.46%, 씨티그룹은 59.86%, 뱅크오브아메리카는 32.41% 하락했다.
‘바겐세일’에 나온 미국 자산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한국 자본만이 아니다.
경제조사 전문회사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투자가들이 미국 기업, 부동산, 주식 등에 투자한 규모는 4140억 달러로 전년 대비 90% 증가했다.
○ 위험성도 고려해야
미국 자산 취득은 한국 자본의 투자지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 이인우 상황정보실 부장은 “외환위기 직전까지 한국 기업들이 수익 가능성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해외투자에 나섰다가 큰 손해를 봤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권경혁 전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실물경제 파급 효과가 큰 변수인 만큼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