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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은 선친의 기일을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로버트 김(67·사진) 씨는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운명한 부친 고 김상영 전 국회의원(8, 9대)을 떠올리며 인터뷰 내내 눈물지었다. 출소를 불과 6개월 앞둔 2004년 2월 그는 차디찬 감옥에서 부친의 임종 소식을 전화로 접했다.
그는 인생의 사표로 늘 부친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그가 조국을 돕고자 했던 것도 “공사를 구분해 공을 우선시하라”는 부친의 생전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유학을 가려면 군대에 갔다 와야겠다”는 그의 말에 부친은 단번에 아들을 강원 양구군의 최전선으로 떠나 보냈다.
1966년 청운의 꿈을 안고 김 씨가 미국 유학을 떠날 때도 부친의 ‘선공후사’는 철저했다. 주변 인사를 통해 거액을 송금할 수도 있었지만 ‘국법을 어길 수 없다’는 부친의 뜻은 추상같았다. 김 씨는 미국에서 식당 잡일부터 공사장 페인트공까지 닥치는 대로 일해 학비를 벌었다.
그에게 이번 방한은 부친의 기일을 지킨다는 점과 함께 40년 만에 한국에서 설을 가족과 함께 맞이한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김 씨는 “그립던 가족들과 저를 도와주신 후원인 여러분을 옆에 두고 설을 쇨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며 “고향인 여수에 내려가면 명절 음식으로 인절미부터 먹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