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다시 백중세’, 공화당은 ‘여전히 무주공산’.
미국 대통령선거(2008년 11월)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주 예비경선(1월 3일)을 10일 앞둔 23일 민주 공화 양당 경선전은 이처럼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과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공화)이 각각 ‘압도적 1위’를 차지했던 게 불과 1개월 전 일이다. 주별로 치러지는 양당의 당내 경선은 23개 주에서 한꺼번에 치러지는 ‘쓰나미 화요일(2월 5일)’에서 사실상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변화냐 경험이냐=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후보의 선두자리는 여전히 견고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19일 치러진 월스트리트저널-NBC방송 여론조사에서 그는 여전히 45% 지지를 얻었다. ‘변화의 기수’를 자임하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25%에 머물렀다.
‘힐러리 대세론’을 의심하지 않아도 좋을 수치지만 힐러리 캠프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힐러리의 적(敵)은 힐러리”라는 말처럼 유권자 사이에 뿌리 깊이 퍼져 있는 ‘힐러리 거부감’이 문제다.
물론 힐러리 후보의 실수도 있었다. 불법이민자 운전면허증 발급을 지지하는 듯 말했다가 나중에 “꼭 그런 건 아니고…”라고 흐리는 바람에 ‘너무 정치적 계산만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힐러리 거부감은 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힐러리가 좋다”는 지지(42%)보다 “절대 안 찍겠다”는 불가론(44%)이 더 높았다. 이에 고무된 오바마 후보는 가는 곳마다 “봐라. 본선 무대에 나가면 내가 당선 가능성이 더 높다”며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1월 초 제일 먼저 치러져 대선 경선의 풍향계로 통하는 아이오와(3일) 뉴햄프셔(8일) 주의 예비경선에선 두 후보가 백중세다. 보스턴글로브가 23일 공개한 뉴햄프셔 여론조사 결과에서 오바마 후보(30%)는 힐러리 후보(28%)를 제쳤다. 불과 1개월 전에는 힐러리 후보가 14%포인트나 앞섰었다. 워싱턴포스트가 19일 보도한 아이오와 여론조사 결과 역시 33% 대 29%로 오바마 후보의 승리였다.
결국 관전 포인트는 오바마 후보가 두 지역에서 모두 승리하느냐다. 오바마 후보의 ‘초반 2승’은 계속되는 백중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두 후보가 1곳씩 나눠 갖는다면 힐러리 대세론이 다시 힘을 얻을 공산이 크다.
▽이게 공화당 맞나?=공화당에선 “초반 선두주자가 늘 이긴다”는 오랜 전통이 깨진 듯하다. 1년간 선두를 달리던 줄리아니 후보가 주춤하는 동안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바짝 따라붙었다.
이번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서 줄리아니, 롬니 후보는 20% 지지율로 공동 선두. 7월까지 지지율 1%였던 허커비 후보는 17%까지 따라붙었다.
줄리아니 후보의 퇴조는 작은 악재가 연속으로 터진 탓이 크다. 뉴욕시장 시절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길 때 경호팀 비용을 뉴욕 시 재정에서 부담하게 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공인의식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산 것이 단적인 사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유권자들이 안보보다는 경제이슈로 관심을 옮기면서 마음을 바꾼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이슈 변화의 피해자는 9·11테러 때 뉴욕시장으로 활약했던 줄리아니 후보. 반면 경영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린 롬니 후보가 수혜자가 됐다.
공화당 경선에서 단연 주목거리는 ‘허커비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지느냐다. 침례교 목회를 이끌다가 빈촌(貧村)으로 통하는 아칸소 주지사를 10년간 지낸 그는 “나는 보통사람”이라며 서민층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그는 성탄메시지에서 ‘예수 탄생의 기쁨’이란 말을 써 가며 종교를 선거에 끌어들이고 있다. 모르몬교도인 롬니 후보를 겨냥해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국세청을 없애겠다는 등 비현실적인 공약 때문에 그의 당선 가능성은 의심받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3, 4위권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론은 “그가 이라크 전쟁 지지 때문에 표를 잃었다”면서도 “여러 개혁 법안을 주도하면서 ‘인기 없는 정책도 필요하면 추진한다’는 그의 용기에 주목한다”며 여전히 우호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