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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서해교전 장병 戰死도 외면한 DJ의 햇볕정책

입력 | 2007-07-19 23:04:00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으로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DJ)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직 햇볕정책에만 매달렸다고 잭 프리처드 전 한반도평화회담 미국특사가 최근 출간한 저서 ‘실패한 외교’에서 밝혔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서해교전 여파와 때마침 드러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때문에 7월 10일로 잡혀 있던 대북협상단의 평양 방문을 미루려 했으나 오히려 한국 정부가 예정대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서해교전 희생자들과 유족들이 DJ 정부 내내 냉대와 무관심 속에 버려졌던 진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햇볕정책을 위해서라면 제 나라 군인의 목숨까지도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오히려 ‘한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에 주의(注意)를 줬다고 프리처드는 밝혔다. 그리고 미 정부는 협상단의 방북을 연기했는데, 그때의 한미관계가 이처럼 ‘기괴했다’고 프리처드는 덧붙였다.

DJ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도 없자 초조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의 도발 때문에 우리 장병들이 전사(戰死)했는데도 이를 무시하라고 미국에 주문할 수 있단 말인가.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이럴 수는 없다.

햇볕정책에 대한 DJ의 이 같은 집착은 안으로 군(軍)의 사기 저하와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를 낳았고, 밖으로는 한미동맹 이완(弛緩)의 시발점이 됐다. 노무현 정권에서 겪고 있는 국가 정체성 혼란과 한미관계 균열의 뿌리가 여기에 닿아 있다.

우리는 그동안 햇볕정책에 따라 북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원을 했다. 하지만 북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되갚았다. 그런데도 DJ는 오늘도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평화개혁세력’으로, 반대하면 ‘수구전쟁세력’으로 국민을 편 가른다. 나아가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두려워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재집권에 목을 매면서, 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여권(與圈)을 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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