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길게 볼 때 2003년 3월 이후 대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활황 국면이 오래 지속된 때문에 투자자들은 은연중 ‘대표 주식인 삼성전자도 많이 올랐을 것’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삼성전자 주가는 2004년 4월 63만8000원까지 오른 적이 있다. 이후 2년 8개월이 흘렀지만 주가는 여전히 64만 원 선이다.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역시 2004년 4월 8만1700원까지 올랐던 LG전자는 요즘 5만3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2004년 7월 상장한 LG필립스LCD는 요즘 주가가 상장 당시 주가에도 못 미친다. 2004년 2월 18만 원에 육박하던 삼성SDI는 최근 주가가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이것이 한국 정보기술(IT) 관련주들의 현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산업인 IT 업종은 대세 상승 기간에 제자리걸음을 했다.
최근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IT 업종에 모아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몇몇 종목의 주가가 얼마나 오를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내수주를 중심으로 몇 년 동안 오름세를 보였던 한국 증시가 IT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다.
○환율 악재가 여전하지만…
IT 관련주가 이처럼 오랜 부진을 겪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실적이 나빠진 것인데, LG필립스LCD나 LG전자가 여기에 속한다. 또 다른 이유는 투자심리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투자심리 악화의 주범은 단연 환율 하락(원화 강세)이 꼽힌다.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수출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적이 나빠진 기업을 제외하고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 등 다른 IT 기업들마저 환율 하락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까지 푸대접을 받아야 하느냐에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환율 하락이 악재이긴 하지만 지금 주가는 악재를 과도하게 반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동부증권 임동민 연구원은 “올해 2분기(4∼6월)를 제외하면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IT 경쟁국인 대만보다 계속 높았고 이런 수출 호조 덕에 9, 10월 연속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나타냈다”며 “IT 관련 주식을 ‘환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IT 관련 주식 상승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IT 경쟁국인 대만의 최근 주가 동향은 한국 IT 업종의 주가를 전망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라고 지적한다.
지난주 대만 자취안 지수는 7,600선에 올라서면서 5월의 고점을 넘어서는 고공 행진을 했다. 한국보다 IT 기업 비중이 더 큰 자취안 지수는 한국 IT 기업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사이 새로운 성장기를 맞고 있는 셈.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환율 급락세가 진정되면 대만 IT 기업의 상승세가 한국으로 옮겨 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나증권 김진호 연구원은 “IT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고, 주가도 싼 편”이라며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로 올라서는 데 IT 업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9년 1개월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고, 외국인투자가들이 2년째 한국의 대표 IT 주식을 팔고 있는 점 등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