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으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옛 것을 거울로 삼으면 흥함과 폐함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과 실을 알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이 말을 하루에 세 번씩 되뇌며 자신을 돌아본다고 한다.
그는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온화하고 겸손한 외형의 이면에는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단호한 결단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부터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의 뒤를 잇는 제4세대 지도자로 꼽혀왔다. 1992년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고 6년 뒤 국가부주석이 됐지만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에는 린뱌오(林彪),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의 영욕을 지켜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98년 국가부주석직에 오른 뒤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됐지만 장쩌민을 의식해 신중하게 처신했다.
하지만 그는 89년 시짱(西藏)자치구 당서기(지역 최고실력자) 시절 티베트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헬멧을 쓴 채 시위현장을 누빈 냉정한 면모도 있다.
그의 잠재력에 눈길을 준 사람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비서를 지낸 쑹핑(宋平). 쑹핑의 천거로 후야오방 총서기 및 덩샤오핑 당시 최고지도자에 의해 공산주의청년단 지도자로 발탁됐다.
그는 42년 상하이(上海)에서 출생한 뒤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친 후쩡위(胡增玉)는 상하이에서 차(茶) 장사를 하다 실패해 타이저우에서 토산품 가게 점원을 했다. 어머니는 일찍 사망했다.
타고난 명석함으로 17세 때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에 입학해 65년 졸업 후 68년까지 정치지도원으로 일했다. 66년 이후 10년간은 문화대혁명에 몰려 간쑤(甘肅)성 수력발전소 건설노동자로 보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